체코 두코바니 원전 계약 '삐걱'…프랑스 EDF 법적 공세·EU 압박까지
한수원, 일부 사업 철수 후 SMR 집중...美 웨스팅하우스와 특허분쟁 여진
한수원, 일부 사업 철수 후 SMR 집중...美 웨스팅하우스와 특허분쟁 여진

한때 신규 주자로 평가받은 한국수력원자력(KHNP)은 불과 수년 만에 유럽 다수 원전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자로 부상했다. 대표적 사례는 체코다. 한수원은 2024년 7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신규 원자로 건설 사업자로 선정됐고, 계약 규모는 약 180억 달러(약 24조768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성과는 즉각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프랑스 국영 에너지 기업 EDF가 입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체코 경쟁 당국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체코 법원이 계약 체결을 일시 중단시키는 가처분을 내렸다. 더욱이 프랑스 국적의 스테판 세주르네 EU 산업 담당 집행위원이 체코 당국에 계약 최종 승인을 보류하라는 서한을 보내면서 EU 차원의 압박도 더해졌다.
체코 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루카시 블체크 체코 산업부 장관은 입찰 결과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프랑스의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최근 현지 언론에 "우리는 입찰이 잘 설계되었고 매우 좋은 제안을 했다고 믿는다. 오히려 EDF가 유럽 시장에 경쟁자가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프랑스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했다.
한수원의 유럽 시장 공략은 체코에 국한되지 않는다.
◇ 동유럽 곳곳 문 두드린 K-원전…불가리아·폴란드 등 추가 공략
불가리아에서는 또 다른 한국 기업인 현대엔지니어링이 2024년 2월 코즐로두이 원자력발전소의 신규 원자로 2기 건설 계약자로 선정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사용할 전망이다. 의회 내 일부 논란에도 이 프로젝트는 진행됐고, 프랑스 국영 기업 EDF는 예비심사에서 탈락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로베르트 피초 총리 정부가 야슬로브스케 보후니체에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입찰을 준비 중이다. 웨스팅하우스·EDF·한수원 등 3대 주요 공급업체 모두와 논의를 진행했고, 2027년 공급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피초 총리는 한국의 제안과 신속한 건설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한수원은 폴란드 원전 도입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폴란드 전력회사인 ZE PAK, PGE와 협력해 폴란드 중부 파트누프에 원자로 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부지 작업은 2022년에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는 웨스팅하우스와 벡텔이 주도하는 미국 컨소시엄이 따낸 루비아토보-코팔리노의 국가 주도 원전과는 별개다. 따로 미국 웨스팅하우스 컨소시엄이 주도하는 국영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한수원은 파트누프 개발 사업비의 최대 30%를 조달하기로 했다.
◇ '정부 보조금' vs '에너지 안보'...유럽 내 K-원전 동상이몽
이러한 확장 움직임의 배경에는 몇 가지 핵심 쟁점이 있다. 프랑스 EDF 등 경쟁사는 "한국 정부 보조금이 EU 경쟁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가격 경쟁력의 근거를 문제 삼고 있다. 반면 체코와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는 에너지 안보와 가격 경쟁력, 프로젝트 신속성 등을 이유로 한국 기업을 선호한다. 대조적으로 EU 집행위와 일부 서유럽 국가는 보호무역주의적 시각과 함께 기술·정책적 견제를 하고 있다.
이러한 확장세에도 유럽에서 한국의 원자력 영향력은 최근 재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 '선택과 집중' 나선 한수원…SMR 전환, 기술 분쟁은 숙제
2025년 초, 한수원은 네덜란드 보르셀레, 슬로베니아, 스웨덴 등 일부 서유럽 입찰에서 자진 철수했다. 공식적으로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체코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밝혔지만, 웨스팅하우스와의 비공개 합의(특허권 분쟁 해결)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자사의 원자로 기술 관련 지식재산권을 사용했다며 체코 입찰을 반대했다. 지난 1월 합의가 이루어져 한수원의 체코 계약 길이 열렸지만, 한수원이 부인하는 비경쟁 조항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한수원은 노르웨이의 노르스크셰르네크라프트, 스웨덴의 셰른풀넥스트와 SMR 사업 타당성 조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유럽 내 SMR 시장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한수원 한 관계자는 "SMR과 체코 프로젝트를 우선하기 위한 경영상의 결정"이라면서 "유럽에서 앞으로도 입찰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원전 기업들은 이처럼 동유럽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프랑스 등 기존 강자들의 법적·정치적 견제와 EU 차원의 규제, 일부 프로젝트에서 전략적 후퇴로 유럽 내 확장세가 조정 국면을 맞았다. 앞으로 체코 등 핵심 프로젝트의 법적 분쟁 결과와 SMR 등 신시장 진출 성과가 유럽 내 한국 원전의 입지를 좌우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