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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가 밀어붙인 美 상선, 아시아보다 5배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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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가 밀어붙인 美 상선, 아시아보다 5배 비싸다

美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 조선소', 트럼프 조선업 부활 정책 시금석 될 듯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 조선소. 사진=한화 필리 조선소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 조선소. 사진=한화 필리 조선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부 연방의회 의원들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조선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생산 비용과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행정부와 의회가 자국 조선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과 중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고 2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도가 장기적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조선산업 재건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국은 조선 부문에서 너무 뒤처져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중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와 미국 내 상업용 선박의 국산화 요건을 담은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조선업 지원 법안도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미 상선업계에 250척의 미국산 선박을 운영하도록 보조하고 유사시 국방부가 이 선박을 물자 수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같은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조선업 재건의 시금석이 될 수 있는 곳이 필라델피아 남쪽 끝에 위치한 한 조선소다. 이 조선소는 한국 조선 대기업 한화그룹이 지난해 인수해 ‘한화 필리 조선소’로 운영 중이다.

이 조선소의 데이비드 킴 최고경영자(CEO)는 NYT와 인터뷰에서 “미국 조선업은 준비돼 있다”며 “다만 지속적인 선박 주문이 필요하며, 미국 정부는 자국산 선박에 대한 보조와 외국산 선박에 대한 제재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조선소는 2027년까지는 추가 선박 주문을 받을 여유가 없고 미국 내 다른 조선소들도 대부분 해군 군함 수주로 가동률이 높아 상업용 선박 생산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또 미국에서 선박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시아보다 훨씬 길고 비용은 5배 이상이다. 킴 CEO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연간 1.5척을 생산하는 반면, 한화의 한국 내 대형 조선소는 매주 한 척씩 선박을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다시 조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이나 일본 등 동맹국에서 제작된 선박을 전략함대로 활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보수성향 씽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로버츠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상선 생산량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정치적 ‘도미노’가 일어난 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글로벌 조선시장 분석업체 BRS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 조선소는 상업용 선박 6765척을 인도하며 세계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일본은 3130척, 한국은 2405척을 인도했고, 미국은 단 37척에 그쳤다.

한화는 한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00척 이상을 생산한 경험이 있으며 필라델피아 조선소의 드라이도크도 일부 LNG 선박 건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내 숙련된 노동력 확보는 또다른 과제다. 한화는 향후 10년 내 조선소 인력을 1500명에서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한편, 미 해군 당국은 해군 군함 조선소들에서도 신입 직원의 이탈률이 높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미 의회는 미국산 선박에 미국 선원을 태우는 데 필요한 인건비를 보조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해양기술자노조인 해양기술자복지협회(MEBA)의 롤런드 렉사 사무총장은 “중국이 조선업 전반을 국가가 보조하는 구조에서 미국도 화물 수송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의 지원책이 성공하려면 수십억달러 규모의 장기적인 재정 투입과 지속적인 산업 전략이 전제돼야 한다”며 “기술 이전뿐 아니라 교육과 숙련 인력 확보도 병행돼야 미국 조선산업의 재건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