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중국 견제·미국 조선업 부활 목적...업계 "공급망 핵심에 부담" 강력 반발
한국·일본 해운업계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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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4월 17일(현지시간)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지배력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치'를 발표하며, 오는 10월 14일부터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조선업 지배력에 맞서고 미국 조선업을 살리려는 목적에서 이번 조치를 내렸다. 처음엔 자동차 운반선이 실을 수 있는 차량 수(CEU· Car Equivalent Unit) 기준으로 차량 1대당 150달러(약 20만 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려 했으나, 업계 반발로 최근 기준을 선박의 순 톤수(Net Ton)로 바꿔 1톤당 14달러(약 1만 9000원)으로 완화했다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실제로 차량 1대당 최대 300달러(약 41만 원)까지 부담이 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롤온롤오프 캐리어(ARRC) 정부관계 부사장 마크 블라운은 "왜 정부가 자동차 운반선에 집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토스 드라이브 아메리카(Autos Drive America) 대표 제니퍼 사파비안은 "현재 미국에 들어오는 자동차 운반선 상당수가 일본과 한국산"이라며 "이번 수수료가 자동차 가격에 최대 300달러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업계 반발을 반영해 미국 해상안보프로그램(MSP)에 참여하는 자동차 운반선은 수수료를 면제하고, 기준도 차량 수에서 선박 톤수로 바꿨다. 하지만 미국산이 아닌 자동차 운반선에는 요금 부과가 계속된다.
미국 내 조선소가 자동차 운반선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자동차 운반선은 움직이는 갑판과 방수구획이 없는 구조 등으로 건조 난이도가 높다. 미국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 리서치 디렉터 콜린 그라보는 "미국 조선소가 이런 선박을 만들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ARRC 부사장 마크 블라운도 "미국 조선업을 살리려면 자동차 운반선부터 만들겠다는 계획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는 미국산 선박 건조와 운용을 지원하는 대규모 보조금 법안을 지난 4월에 발의했다. 하지만 미국산 선박 건조 비용이 외국산보다 훨씬 높아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자동차 운반선, 미국 자동차 공급망의 핵심
자동차 운반선은 자동차를 한 번에 최대 9000대까지 실을 수 있는 특수 선박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수십만 대의 자동차가 자동차 운반선을 통해 수입·수출된다. 이번 수수료는 미국 항구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적용되며, 차량이 수출이든 수입이든 요금은 똑같이 붙는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운반선이 자동차 공급망의 핵심인 만큼, 과도한 수수료 부과가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산 자동차 운반선은 거의 없어, 미국 수출용 완성차를 실은 자동차 운반선은 모두 수수료를 내야 할 상황에 놓였다.
◇ 한국·일본 해운업계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 일본의 해운업계가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1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국가별 자동차 수입액 비중 1위는 멕시코(22.9%), 2위는 일본(18.4%), 3위는 한국(17.2%)이었다. 멕시코는 미국 내 공장에서 육상·해상으로 수출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완성차를 해상으로 운송할 수밖에 없다.
세계 자동차운반선 시장은 일본, 한국, 유럽 회사가 선두주자다. 일본의 NYK, K Line, MOL 등이 일본 완성차 수출을 맡고, 한국은 현대글로비스와 유코(EUKOR) 카캐리어스가 현대차·기아 해상 운송을 나눠 담당한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치로 가장 대표적인 크기인 6500CEU급 자동차운반선은 입항시마다 97만 5000달러(약 13억 3000만 원)를 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해양수산부는 오는 10월 14일부터 외국산 자동차운반선에 수수료가 부과될 것으로 보고, 해운물류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외국산 자동차운반선에 대한 수수료는 기존에 없었던 규정"이라며 "자세한 선종별 피해를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업계 대응과 전망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수수료 규정을 완화했지만, 미국산이 아닌 자동차 운반선에는 요금 부과가 계속된다고 지적한다. 미국 조선소가 자동차 운반선을 만들 역량이 부족하고, 미국산 선박 건조 비용이 외국산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미국 케이토연구소와 ARRC는 "미국 조선업이 살아나려면 자동차 운반선이 첫 번째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기아와 운송 계약을 갱신하며 기존보다 계약 기간은 늘렸으나, 수출 물량은 줄여 계약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현대차·기아 외 고객사 비중을 늘리고, 완성차 미국 내 생산 기조가 늘어나면 반조립 부품(CKD) 수출 확대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수수료를 부과하면서 자동차 공급망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책 완화와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