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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산 제품, 미국 막히자 동남아·유럽·남미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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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산 제품, 미국 막히자 동남아·유럽·남미로 쏟아진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각) 중국 저장성 닝보에 위치한 G스타 전자전기유한회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에어프라이어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달 19일(현지시각) 중국 저장성 닝보에 위치한 G스타 전자전기유한회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에어프라이어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 관세를 통해 중국산 제품의 미국 시장 진입을 막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 생산된 자동차·장난감·신발 등 대규모 수출 물량이 동남아시아와 유럽, 남미 등지로 몰리면서 세계 각국 산업 구조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 속에서 새로운 수출 쇼크를 세계에 퍼뜨리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중국의 세계 무역 흑자는 약 5000억 달러(약 694조5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넘게 늘었다.

리어 페이 캐피털이코노믹스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수출해야 할 물건이 워낙 많기 때문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해도 물류 흐름 자체를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중국 내수 부진에 '공급 과잉'…생산은 더, 수요는 줄어

이같은 수출 확대는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내수 침체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부동산 위기로 수천만 가구의 자산이 급감하자 중국 당국은 수년 전부터 제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왔고 그 결과 국내 수요보다 훨씬 많은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리어 페이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거의 모든 품목에서 눈에 띄게 상승했다. 특히 전기차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45% 증가했고 수출량도 중국자동차제조협회(CAAM)에 따르면 64.6% 늘었다.

이 같은 중국산 제품은 동남아시아·남미·유럽으로 우회 수출되며 미국 수요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도 중국산 공세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 관세를 예고한 지역이다. NYT는 “미국은 현재 이들 국가와 협상을 위해 관세 부과를 일시 보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국가는 외국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중국에서 자국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투자 유치를 통한 반사이익을 얻고 있지만 상당수 중소 제조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공세로 경쟁력을 잃고 도산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 저가품과 첨단기술 동시 밀어붙이는 중국…전통 경제 이론 무력화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라는 국가 산업정책을 통해 반도체·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를 추진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고기술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배경이다.

그러나 NYT는 “중국은 이와 동시에 저가 제품 생산도 대폭 늘리고 있어 세계 경제 이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경제학자 프리얀카 키쇼르는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성숙한 경제로 성장하면 값싼 제품 생산에서 점차 벗어나야 하는데, 중국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에서는 중국산 제품 수입이 지난달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으며 자동차 업계는 타격이 가장 심각한 분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값싼 중국산 의류 제품에 밀려 2023년과 2024년 사이 25만명이 의류산업 일자리를 잃었다. 태국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들도 전기차 수입 증가로 폐업 사례가 속출하고 있고, 브라질에서는 중국산 차량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무라증권 소날 바르마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각국은 제조업 공동화를 방치하든지, 아니면 특정 산업에 한해 미국처럼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며 “그러나 중국은 외교 무기로 무역과 투자를 활용하고 있어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망이 지정학적 경계에 따라 양분되고 있다”며 “국가마다 누구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