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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미래, 1979년 혁명 이후 최대 전환점에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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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미래, 1979년 혁명 이후 최대 전환점에 직면

대대적 파괴 불구 정신적 승리를 외치면 정권 존속에 무게, 국민적 지지는 크게 약화
86세 하메네이 후계 구도도 변수, 예상 밖의 인물 나올 수도
수 십년 동안 신정정치를 펼쳐온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수 십년 동안 신정정치를 펼쳐온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사진=로이터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위태로운 휴전이 성립된 가운데, 12일간의 무자비한 공습으로 큰 타격을 입은 이슬람 공화국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중대한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파이낸셜 타임즈(FT)25(현지시각) 이란 정권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이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방공망은 대부분 파괴됐고 많은 군 최고 사령관들이 사망했으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인들의 봉기를 거듭 촉구하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암살까지 위협했다. 그러나 정권으로서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공격에서 살아남고 미국과의 더 파괴적인 전쟁을 피하면서 반격을 계속하는 것이 기준이었다고 FT는 분석했다.

이슬람 공화국은 12일간의 무자비한 공습으로 상처를 입었음에도 "승리"를 선언했다. 정권 측면에서는 이스라엘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과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30년간 제도 개혁 저항해온 강경파 권력구조


개혁파 정치인이자 전직 정치범인 모하마드 사데그 자바디-헤사르는 "이 전쟁이 끝난 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전쟁 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며 "이름은 바뀌지 않겠지만 방식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고 FT가 전했다.

30년 동안 86세의 하메네이와 그를 둘러싼 강경파 권력 중심들은 제도 개혁에 완강히 저항해왔으며, 점점 더 세속화되는 사회에서 좌절한 젊은이들의 증가하는 요구를 조직적으로 억압해 왔다. 당국은 2009년 이후 최소 4차례의 대규모 시위에 대해 잔혹한 탄압과 투옥, 수백 명의 활동가와 시민 살해로 대응했다.

워싱턴 존스홉킨스 고등국제학대학원의 발리 나스르 교수는 "중국이 여전히 중국 공산당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명목상으로만 살아남는다 해도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확한 순간이나 정확한 지도력은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직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정권 내부자는 이란이 "침투 때문에 심각한 정보 실패를 겪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많은 고위급 인사를 잃었지만 아무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는 아니다"라"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전쟁 중 군사령관인 모하마드 바게리 소장이 이스라엘 공습 첫날 살해된 고위 안보 관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하메네이는 재빨리 후임으로 압돌라힘 무사비 장군을 지명했는데, 그의 임명은 이란 정권이 더 강경한 길을 추구할 의도가 없다는 신호로 널리 해석됐다.

무사비의 승진은 변화의 잠재 신호로 여겨졌는데, 하메네이가 바게리가 복무했던 혁명수비대가 아니라 정규군 중에서 온건하다고 여겨지는 장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 하메네이 후계 구도 변수...군부 인수 가능성도 제기


전쟁 전 이란 정치를 지배한 주제는 86세 하메네이의 후계자와 그로 인한 변화였다. 중동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지도자인 그는 1989년 이래 집권해 왔으며, 주요 목표는 공화국의 생존과 그의 사망 시 차기 최고지도자로의 순조로운 인수인계였다.

정권 내부자는 하메네이가 살해됐다면 "2시간 내에" 후임자가 정권을 넘겨받았을 것이라며 이슬람 공화국의 생존은 위태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스르 교수는 이란이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기대했던 "중대한 전환"이 이제 앞당겨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지명된 사람은 없지만, 다른 뚜렷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아들 모즈타바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이 이러한 가정을 뒤엎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미국 기반 이란계 미국인 학자 메르자드 보루제르디는 "일반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것 같은 또 다른 성직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의 퇴역 군 장성 같은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보루제르디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어느 시점이 되면 혁명수비대가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지금 당장 제도적 근육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미주리 과학기술대학교의 보루제르디 교수는 "혁명수비대는 성직자 계급의 권력 쇠퇴를 눈치채고 있다""현재로서는 희박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야심차고 젊은 유형의 사람들이 나서서 국가의 국익을 위해 핵 규제를 받아들이고 정치적 사면과 연립정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 과거 격변과 다른 점은 조직적 반대 세력 부재


과거의 격변의 순간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공화국 안팎에 조직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반대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기성세대는 또한 외세에 의해 자국에 강요된 변화에 대한 분노에 찬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는 1941년 영국과 소련의 침공과 점령으로 군주 레자 샤가 퇴위하도록 압력을 가한 사건, 10년 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흐 총리에 대항하여 영국 정보부(MI6)와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주도한 쿠데타가 포함된다.

이슬람 공화국의 건국 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수립한 체제 하에서, 이란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권력은 최고 지도자와 엘리트 혁명수비대, 사법부, 종교 기관을 포함한 핵심 강경파 영향력 중심지에 있다.

자바디-헤사르는 "이데올로기보다는 민족주의가 이슬람 정권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란의 지도자들은 이름이나 권력자가 누구가 되든 간에 국내 변혁에 복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군대에 의한 어떤 변화도 이란을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으로 만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채텀하우스의 중동 국장인 사남 바킬은 정권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변한다""이것이 바로 일어날 일"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어쩌면 이미 진화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