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명령이 실제로 시행되기까지는 하급심 법원에서의 집단소송 성립 여부, 주 정부들의 대응, 적용 범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자동으로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만약 시행될 경우 미국 헌법 수정 제14조가 보장해온 ‘출생시 시민권’ 원칙에 근본적 변화가 생긴다.
◇ 집단소송 성립 여부, 전국 효력 관건
29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원고 측은 이 행정명령이 발효되기 전인 향후 30일 안에 해당 사건을 집단소송으로 전환해 전국적인 효력 정지를 다시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메릴랜드 사건의 원고인 이민자 지원 단체와 일부 임산부들은 해당 법원을 상대로 집단소송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원고 측 변호인 윌리엄 파월은 “집단소송이 받아들여질 경우 미국 내 모든 관련 출생 아동에게 효력 정지가 적용될 수 있다”며 “결국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노트르담대 사무엘 브레이 교수는 “해당 행정명령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며 다수의 법원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집단소송을 통한 ‘전국 효력’ 회복이 가장 실효성 있는 대응 방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주 정부들, “행정명령은 헌법 위반”…소송 계속
22개 주 정부도 원고로 참여하고 있어 주 정부 차원의 대응 역시 중요한 변수다. 이들은 출생시민권 제한 조치로 인해 주민 등록, 행정 절차, 복지 예산 등에 광범위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저지주 법무장관 매슈 플랫킨은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시민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라며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명시적으로 남긴 쟁점 중 하나는 주 정부가 전국 단위의 가처분 명령을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판단을 유보하고 하급심이 우선 판단하도록 했다.
◇ 대법원 판결, 직접적 시행 허용은 아냐
앞서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급심 법원이 내렸던 ‘전국 단위 효력정지’ 조치를 제한했다. 판결문은 트럼프가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작성했다. 그는 “사법부가 원고가 아닌 국민 전체에게 효력을 미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사법권의 과도한 확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판결은 행정명령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며 행정명령의 효력은 30일간 유예된 상태다. 따라서 이 기간 안에 원고 측이 집단소송 등을 통해 효력정지를 다시 확보하지 못할 경우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행정명령이 적용될 수 있다.
콜롬비아대 이민자권리 클리닉의 엘로라 무케르지 소장은 “이 조치가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되면 어떤 주에서는 아기가 시민권을 얻고 다른 주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향후 전망…출생시민권 둘러싼 본안 판결에 쏠리는 시선
결국 이번 행정명령의 시행 여부는 헌법 수정 제14조의 해석이라는 본질적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로이터는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실제로 발효되면 미국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