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와 M&A 거래 급냉각, 실효 관세율 15.8%로 1936년 이후 최고, 공급망 재편 지연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5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기업들은 미국으로의 생산 이전을 서두르지 않고 있으나 투자와 M&A 활동은 이미 크게 줄어들며 글로벌 경제에 냉기가 돌고 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관세 수입은 242억 달러(약 33조3000억 원)로 월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의 수입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4% 줄어든 반면, 미국의 관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거의 4배 늘어났다.
현재 미국의 실효 관세율은 15.8%로, 193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13% 포인트 이상 올랐다는 것이다.
◇ M&A 거래 활동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급락
무역전쟁의 부작용은 금융시장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베인앤컴퍼니 자료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글로벌 사모펀드 딜메이킹이 2021년 정점 이후 지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PWC가 딜메이커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가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딜을 일시 중지하거나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WC의 딜 프랙티스 파트너인 조쉬 스미겔에 따르면, 사모펀드 회사들은 약 1조 달러(약 1365조 원)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없었다면 계획된 출구 전략이 지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2025년 500대 기업 투자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10곳 중 7곳(68.0%)이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아예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 공급망 재편 의도와 현실의 차이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관세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공급망 재편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바이엘의 제약 책임자인 슈테판 올리히는 지난 6월 브뤼셀에서 기자들에게 "공급망을 바꾸려면 여러 해가 걸린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인이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앞으로 3년간 공급망 온쇼어링 또는 리쇼어링을 늘릴 계획이지만, 이러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기업은 단 2%에 불과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시어링은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8년에서 10년 안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지만, 내년이나 5년 후는 고사하고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면 현 상태를 완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의 수입은 크게 줄었다.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5월 중국의 대미 수출은 34.5% 급감한 반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14.8%, 유럽연합(EU)은 12.0% 늘어나 글로벌 무역 패턴의 재편이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가구당 평균 3800달러(약 52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단기적으로 물가가 2.3%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관세 인상이 물가 안정화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으며, 경제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을 모두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우려했던 것만큼 높아지지는 않았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자동차 업체 등 기업들이 아직 관세 인상분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있다"며 "상호관세 시행이 유보된 상태이고, 관세 불확실성이 잠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물가 리스크 경계감이 충분히 완화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영국이 트럼프 정부와 처음으로 무역협정을 체결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체결된 미-영 무역협정에 따르면 영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기존 25%에서 10%로 낮아지고, 영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는 할당량 내에서 폐지된다.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보세창고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수입업체들이 관세 회피를 위해 상품을 보세창고에 최대 5년간 보관할 수 있어 보세창고 보관 비용이 일반 창고 비용의 최대 4배까지 치솟고 있다.
베렌베르크 은행의 미국 경제학자 아타칸 바키스칸은 6월 연구 노트에서 "연초에 감세와 규제 완화를 기대했던 기업들이 갑자기 신뢰를 잃었다"며 4월 2일 이후 서비스 및 제조업 계약 부문의 투자 및 신규 주문에 대한 여러 사업 계획 지표를 인용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당분간 관망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의 박가희 연구위원은 "정치·대외 충격에 따라 경제정책이 자주 바뀌면 기업들은 투자 시점이나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며 "불확실성 해소 전까지 기업의 투자 위축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