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지우거나 축소하려는 시도를 잇따라 벌이면서 ‘오웰식’ 역사 통제 논란이 커지고 있다.
3일(이하 현지시각) CNN에 따르면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산하 미국역사박물관은 최근 ‘미국 대통령: 영광과 짐(The American Presidency: A Glorious Burden)’이란 이름의 전시 공간 중 ‘대통령 권한의 한계(Limits of Presidential Power)’ 구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두 차례 탄핵에 대한 언급이 담긴 설명판을 철거했다. 이 안내판은 지난 2021년 9월 설치됐으며 기존 탄핵 전시물 앞에 배치돼 있었다.
박물관 측은 “박물관의 ‘레거시 콘텐츠’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해당 설명판이 제거됐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서명한 행정명령이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행정명령은 스미스소니언을 포함한 연방 기관의 역사 콘텐츠에서 ‘이념적 왜곡’을 제거하겠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바 있다.
CNN은 “설명판 제거는 전시물 자체를 바꾼 것이 아니며 박물관은 향후 모든 탄핵 사례를 포함한 수정판을 공개하겠다고 했다”면서도 “트럼프가 싫어하는 사실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오웰식 역사 지우기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 통계국장 전격 해임…비판한 공화당도 "유감"
트럼프 대통령의 ‘불편한 기록 지우기’는 문화·기억기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지난달 31일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의 에리카 맥엔타퍼 국장을 해임했다. 이날 발표된 고용지표가 비(非)코로나 시기 기준으로 2010년 이후 최악의 3개월 연속 성적을 기록한 직후였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통계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뉴스맥스와 인터뷰에서 “오늘 수치를 믿을 수 없어서 해임했다”고 말해 정치 보복 논란을 키웠다.
이같은 해임에 대해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신시아 루미스 와이오밍주 상원의원은 “숫자가 정확하더라도 대통령이 바라는 내용이 아니라고 통계 책임자를 해임하는 건 성급하다”고 비판했고, 톰 틸리스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도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 수치였다는 이유라면 성숙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랜드 폴과 리사 머코스키 상원의원도 “통계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CNN은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데이터가 나오지 않으면 책임자를 바꾸는 신호를 주는 셈”이라며 “이는 공직자들의 판단을 위축시키고 설령 정확한 통계라도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검열과 삭제, 반복되는 패턴"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스스로를 지지하는 극우 시위대의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습격 사건 피의자들을 ‘인질’로 지칭하며 옹호했고 흑인·여성 관련 전시나 콘텐츠를 ‘좌파적’이라며 정부 조직에서 제거해왔다. 반대 의견을 표현한 시민에 대해선 ‘불법 행위’라고 간주하거나 일론 머스크를 비판한 이들을 연방법으로 조사하겠다는 발언도 나온 바 있다.
또 자신이 지지하는 판사에 대한 비판은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반대 판사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공격해왔다. 재임 초반에는 자신에게 비판적이던 군 지도자의 초상화를 국방부에서 철거하는 한편, 감사 기능을 수행하던 독립 감사관 대거 해임 조치도 단행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