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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 회의록, 사담·농담까지 기록해 '사생활 침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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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 회의록, 사담·농담까지 기록해 '사생활 침해' 논란

고객 험담, 점심 메뉴까지 회의록에 고스란히…맥락 오인해 엉뚱한 요약도
이용자들, 중요 대화는 '채팅'으로…전문가 "AI 사용 고지, 공유 제한해야"
 AI 회의 비서가 회의 내용을 요약해주는 모습. 최근 AI 회의록이 고객 험담이나 점심 메뉴 같은 사적인 대화까지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AI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AI 회의 비서가 회의 내용을 요약해주는 모습. 최근 AI 회의록이 고객 험담이나 점심 메뉴 같은 사적인 대화까지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AI가 생성한 이미지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AI 회의 비서가 사적인 농담까지 무분별하게 기록하며 사생활 침해 논란을 낳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기술이 편리함의 이면에서 의도치 않은 감시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WSJ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 운영자 티파니 N. 루이스는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한 잠재 고객이 여러 차례 회의 약속을 어기는 등 사기 징후를 보이자, 루이스는 비서와 통화하며 "이 사람, 혹시 나이지리아 왕자 같은 거 아니야?"라고 농담을 던졌다. 문제는 이 모든 대화가 AI 노트테이커에 기록돼, 해당 발언이 포함된 회의 요약본이 잠재 고객에게 그대로 전송됐다는 사실이다. 오하이오주 스토에 사는 루이스는 "상대방이 유머 감각이 뛰어난 분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러한 해프닝은 루이스만의 경험이 아니다. 브랜딩 회사 '스튜디오 델저'를 운영하는 니콜과 팀 델저 부부는 고객이 불참한 회의에서 나눈 점심 메뉴 이야기가 AI 회의록에 담겨 황당해한 일도 있었다. 요약본에는 "스튜디오는 퍼블릭스에서 샌드위치 재료를 살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거나 "수프는 싫어함"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에 근무하는 안드레아 세라의 회의록에는 동네 마트에 대한 불만이나 요리하다 부엌을 태울 뻔한 잡담이 업무 관련 실천 사항과 함께 버젓이 기록돼 있었다. 세라는 "회의 전략 사이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깜짝 선물처럼 끼어 있다"고 전했다. 그의 상사인 데보라 리마는 AI가 회의록에 기록한 "어이, 귀염둥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후, "가장 웃긴 사례들을 보관할 전사 슬랙 채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를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상황이 오해를 낳기도 한다. 애리조나주 투손의 존 배런타인 천문학자 겸 컨설턴트는 텍사스 홍수에 관해 이야기하며 나눈 대화를 AI가 "...익살스럽게 언급했다"고 요약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AI가 대화의 맥락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심지어 한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고양이 '몬티'가 집에서 토한 사건에 대해 남편과 나눈 대화가 "...고려했다"는 엉뚱한 내용으로 요약돼 곤란을 겪었다.

◇ "나이지리아 왕자?"…웃어넘기기 힘든 AI의 실수들

AI 노트테이커는 통화 녹음, 전사, 실천 사항 생성 등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줌(Zoom)의 'AI 컴패니언'은 지난해 1월 말까지 720만 건이 넘는 회의 요약본을 생성했을 정도다. 2025년 AI 회의록 시장은 실시간 전사, 화자 분리 기능을 넘어 몸짓이나 시각 자료까지 이해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기술로 진화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 기업들은 오남용 방지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줌의 스미타 하심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우리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길 원한다"라고 밝혔고, 구글의 아와니시 베르마 수석 디렉터 역시 "회의 참가자들이 AI 도구 사용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 서비스는 AI가 작동할 때 알림창이나 아이콘, 음성 신호 등으로 사용자에게 고지한다.

◇ '감시자'가 된 AI…달라지는 회의 문화와 대응책

하지만 사용자들은 점차 행동에 변화를 보이고 있다. AI가 맥락을 오해하는 것을 경험한 배런타인은 이제 AI가 켜진 회의에서는 공개적으로 말하는 대신 비공개 채팅 기능을 더 자주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누군가에게 비공개로 한마디 하면 그 내용은 AI 노트테이커에 수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의 이면에 놓인 사생활 침해 위험을 두고, 전문가들은 균형 잡힌 활용을 위한 몇 가지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회의 참가자들에게 AI 사용 여부를 명확히 알리고, 사적인 대화는 AI가 듣지 않는, 따로 마련된 채팅 등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한해 공유하고, 기업 차원에서는 GDPR, CCPA와 같은 국제 개인정보 보호법을 포함한 데이터 보안 규정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편리함을 위해 도입한 AI가 회의실의 자유로운 대화를 위축시키는 '감시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