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이 관세 충격 상쇄, 서민층만 물가 고통 가중
전문가들 “험한 길 기다린다” 경고, ‘버핏은 478조 원 현금 쌓고 기다린다’
전문가들 “험한 길 기다린다” 경고, ‘버핏은 478조 원 현금 쌓고 기다린다’

◇ 관세 수입 급증 vs 기업 부담 늘어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4월 2일을 "미국 해방의 날"로 정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전쟁을 본격화했다. 모든 수입국에 기본 10% 관세를 매기고, 60개국 이상 상품에는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 상품에는 26%의 관세가 적용된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7월 관세로 거둬들인 돈이 290억 달러(약 40조3500억 원)라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 금액이 월 500억 달러(약 69조57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예일 예산 연구소 조사 결과 미국인들이 수입품에 내는 평균 세율은 18.6%로 1933년 이후 9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런 관세 부담이 고스란히 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건설장비 업체 캐터필러는 관세 여파로 3분기에만 5억 달러(약 6950억 원), 올해 전체로는 13억∼15억 달러(약 1조8000~2조 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도 캐터필러 주가는 3% 하락에 그쳤다. 인프라와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대한 기대감이 관세 충격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4월 패닉 이후 오히려 급등세를 탔다. 투자자들이 관세 소식에 둔감해지면서 AI 열풍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각종 무역 합의들은 실체보다는 과시용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식 협정문도 공개되지 않았고, 통상 무역협정은 법무팀이 검토하는 데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EU가 6000억 달러(약 834조 원)를 미국에 새로 투자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했지만, EU 측은 기업들이 "관심을 표명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럽이 트럼프 임기 중 미국 에너지를 해마다 2500억 달러(약 347조8700억 원)어치 사겠다는 약속도 현재 구매액 700억 달러(약 97조4000억 원)와 견줘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 양극화 심화로 서민층 타격 커져
증시와 서민 경제 사이의 온도차는 미국 경제의 양극화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유층은 주식 투자로 돈을 벌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AP통신과 NORC가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절반 이상(53%)이 식료품비를 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았다. 성인 10명 중 3명은 "선구매 후결제" 서비스를 쓰고 있어 가계 살림이 팍팍해졌음을 보여준다.
고용 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일주일 이상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197만 명으로 늘었다. 2021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도 1.2%로 작년 하반기 2.4%보다 크게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고용통계가 나쁘다며 노동통계국장을 경질한 것도 경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IMF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올해 세계 경제를 0.8%, 내년에는 1.3% 위축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도 올해 1.0%, 내년 1.6%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공화당)은 "시장은 곧 모든 게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앞으로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법원이 대통령의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법 발동을 막을 수도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미국 주식시장이 회복력을 보인 배경을 분석했다. 미국은 무역이 전체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 수준이지만, 캐나다와 멕시코는 3분의 2를 넘는다. 무역 의존도가 낮은 미국이 관세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AI 붐이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기술주를 빼면 S&P 500 지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듯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 분기 30억 달러(약 4조1700억 원)어치 주식을 팔아 11분기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버핏은 주가가 더 떨어질 때를 대비해 3440억 달러(약 478조6700억 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