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스페인 공장 건설 두고 '환경 파괴' 암초 만나

글로벌이코노믹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스페인 공장 건설 두고 '환경 파괴' 암초 만나

카탈루냐 주정부 '전략 사업' 지정…1조 8천억 투자·1400명 고용 기대
환경단체 "가뭄 지역 물고갈·농지 파괴"…3천 명 시위·행정소송 제기
몬트로이그 델 캄프의 롯데 공장 건설 예정 부지에서 한 시위자가 향초를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사진=엘 트리앙글레이미지 확대보기
몬트로이그 델 캄프의 롯데 공장 건설 예정 부지에서 한 시위자가 향초를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사진=엘 트리앙글레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스페인 카탈루냐에 추진하는 대규모 배터리 소재 공장 건설을 둘러싸고 현지 여론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고 현지 언론 엘 트리앙글레(El Triangle)가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일자리 1400개 창출과 스페인을 유럽 전기차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 기회로 보고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만성적인 가뭄에 따른 수자원 고갈과 농업 경관 파괴를 불러올 '재앙'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스페인 카탈루냐 타라고나주 바시스 캄프 지역의 몬트로이그 델 캄프에 전기차 배터리 핵심 음극집전체인 일렉포일(동박)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엘스 코메야레츠 산업단지 안 총 44헥타르(약 13만 평) 터에 1단계로 28헥타르 규모 공장을 먼저 짓는다.

초기 투자액만 4억 유로(약 6493억 원)에 이르며, 앞으로 단계적 증설을 통해 총투자비는 12억 유로(약 1조 9749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투자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유럽연합(EU)의 정책에 따라 급증하는 유럽 내 배터리 수요에 대응하려는 전략이다. 공장이 들어설 몬트로이그 델 캄프는 항만과 철도 접근성이 뛰어나 국제 공급망의 최적 거점이라는 평가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이 사업을 '전략적 중요 사업'으로 지정하고, '전기차 관련 경제 회복과 전환을 위한 전략 계획(PERTE)'에 포함해 행정 절차를 대폭 줄였다. 자치정부는 이 공장이 기존의 세아트(Seat)와 폭스바겐(VW) 등 대형 자동차 공장과 상승 효과를 내며 지역 자동차 산업 집적지를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 '장밋빛 전망' 이면의 그림자…물·농지 파괴 우려

그러나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다. 지역 농부와 주민, 환경단체들은 연대체 '살벰 로 캄프'와 '헤페크-에데세'를 중심으로 공장 설립 저지에 나섰다. 이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물이다. 고질적인 '구조적 가뭄'을 겪는 지역에서 공장이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를 사용하면, 공장 터 바로 아래에 있는 핵심 농업용 지하수원(대수층)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동박 제조 공정에 쓰일 화학물질 때문에 생기는 토양과 수질 오염 가능성 또한 제기한다.

특히 이들은 공장 터가 대대로 이어져 온 올리브와 헤이즐넛 등 전통 농경지를 포함하고 있어, 건설이 시작되면 지역 농업 경관을 영구히 훼손하고 문화 전통까지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연대는 "친환경 산업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이 지역을 위험에 빠뜨리는 투기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치정부가 '전략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완화하고 공론장을 축소하는 등 '절차의 정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 커지는 반발…인간 띠잇기 시위·행정소송 확산

반대 여론은 시위를 통한 실력 행사로 번졌다. 인간 띠잇기, 도로 점거, 트랙터 시위 등이 이어졌고, 지난 5월에는 3000명이 모여 최대 규모의 반대 집회를 열었다. 동시에 이들은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카탈루냐 고등법원(TSJC)에 행정소송 2건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심리에 들어갔다. 지역 내 정치권도 분열 양상을 보인다. 몬트로이그 델 캄프 시의회 시장과 여당은 사업을 지지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환경 보증과 절차 투명성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날 선 대립 탓에 당초 2025년으로 예정했던 공장 가동 시점은 2027년으로 이미 미뤄졌다. 이번 사태는 대규모 산업 투자를 유치하려는 정부와 천연자원과 전통적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 사이의 갈등을 넘어, 이것이 진정한 '정의로운 전환'인지, 아니면 '녹색으로 포장된 투기'인지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진다. 법원의 판결과 여론의 방향에 따라 사업 지연이나 사회적 비용 증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공장 규모 축소나 해수 담수화 연계, '산업-농업 공존 모델' 같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