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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과 화석 연료 에너지의 충돌, 파키스탄 전력망 공급의 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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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과 화석 연료 에너지의 충돌, 파키스탄 전력망 공급의 부조화

파키스탄 전력 25%가 태양광…부자들은 전기 절약, 서민들은 요금 두 배
“중국산 패널 값 폭락+정부 보조금이 확산 불러…빈곤층 전기료 폭등, 전력망 붕괴 우려”
파키스탄에 태양광 보급이 확산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전기료가 2배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지=GPT4o 이미지 확대보기
파키스탄에 태양광 보급이 확산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전기료가 2배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지=GPT4o
태양광이 급속히 늘어나 파키스탄 전체 전력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됐지만, 정작 혜택은 주로 부유층이 보고 빈곤층의 전기요금 부담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4(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는 파키스탄의 태양광 확대 보급과 전기료의 이율배반적 실상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 태양광, 2년 만에 주요 전력원으로

파키스탄에서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태양광 발전이 전체 전력에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전체 전력의 약 25%를 담당하며 석탄, 가스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장 큰 계기는 2023년 중국산 태양광 패널 값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었다. 정부 보조금까지 더해져 대형 농장주와 부유층이 앞다퉈 태양광 설비를 들여왔다. 펀자브주 다쿠 마을의 농부 무하마드 라티프(68)는 태양광 펌프 덕택에 메마른 땅을 경작지로 바꾸었고, 수익을 늘려 아들을 영국에 유학까지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려면, 국가 전력망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전기를 사서 써야 한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과 큰 농장은 태양광을 설치해 전력망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니 전력망에 남은 건 주로 가난한 가정뿐이었다. 문제는 오래된 석탄발전소와 비싼 화력발전소를 돌리려면 큰돈이 드는데, 이 비용을 이제 남아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눠 받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의 전기요금이 크게 올랐다.

◇ 가난한 이들의 전기료 부담 두 배

세계은행에 따르면 파키스탄 인구의 45%가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다. 이들 다수는 태양광 설비를 마련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화석 연료 전력망에 남은 서민과 빈곤층의 전기요금은 2021년 이후 두 배 이상 뛰었다. 정부는 일부 보조금으로 요금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이 전기료를 내기 위해 식비를 줄여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펀자브의 농부 압둘 카림(34)매달 오르는 전기요금을 내느라 가족이 먹을 것을 줄인다아이들이 더위로 쓰러질 때만 선풍기를 켰다고 말했다.

하스낫 칸 파키스탄 태양광협회 부회장은 부유한 가구는 태양광을 쓰고, 서민 가구는 비용을 떠안는 악순환이라고 지적했다.

◇ 정부 정책 실패와 빚더미 전력 부문

에너지 분석가 무하마드 바싯 가우리(Muhammad Basit Ghauri)는 이번 혼란의 근본 원인이 태양광 확산 속도 자체라기보다, 과거 정부 정책의 실패에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이후 만성적인 정전 사태를 막겠다며 정부는 석탄과 가스 발전을 대규모로 늘렸고, 발전소 운영사에는 전력 사용량과 관계없이 일정 비용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발전소가 돌지 않아도 막대한 비용이 발생했고, 지금은 전력 부문 전체 부채가 약 56억 달러(77700억 원)에 이르렀다.

레가리 전력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태양광이 많아지니까, 전기가 남아돌 때가 있다. 하지만 기존 계약 때문에 정부는 안 써도 되는 발전소 전기까지 돈을 내야 한다. 결국 쓸모없는 전기에도 세금이 나가는 셈이다. 그래서 태양광으로 남은 전기는 정부 전력망에 팔지 말고, 배터리에 저장하거나 집에서 직접 쓰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빈부 격차 갈라놓은 태양광 혁명

펀자브 북부 군사 벨트지역처럼 한때 농지였던 곳은 태양광 투자로 대규모 저택과 비옥한 농장으로 바뀌었다. 전직 군 장교 무하마드 하산 미라즈는 은퇴 뒤 태양광을 기반으로 한 대저택을 지으며 태양광은 새로운 경제를 만들었지만, 어두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다쿠의 기업인 하지 자베드 다쿠는 에어컨과 펌프를 모두 돌리고도 남는 전기를 전력망에 팔며 수익을 얻는다. 그는 일부 수익을 요금에 시달리는 가난한 가정에 기부하면서도 이 부담은 개인이 아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태양광 발전 확대는 전력난 해소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부담이 빈곤층에 집중되는 새로운 불평등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석연료 위주의 왜곡된 계약구조와 설비 과잉, 정책적 준비 부족이 오늘의 상황을 불렀다고 진단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