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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국기 제도 허점에 러시아·이란·북한 제재 무력화"…700척 넘는 ‘그림자 함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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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국기 제도 허점에 러시아·이란·북한 제재 무력화"…700척 넘는 ‘그림자 함대’ 확산

RUSI 보고서, 국제 해상 관리 체계 근본적 수정·IMO 권한 확대 촉구
EU는 444척 선박 블랙리스트에 올려 차단 중
지난 한 해 동안 약 700척의 선박이 제재를 받았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한 해 동안 약 700척의 선박이 제재를 받았다. 사진=AP/연합뉴스
지난해 약 700척 가까운 선박이 국제 제재 대상에 올랐지만 선박 등록 제도의 허점 때문에 제재 효과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2일(현지 시각) 유로뉴스가 전했다.

런던에 있는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9월 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이란·북한이 제재를 피하려고 선박 소유권 은닉, 국기 변경(flag hopping), 관리가 느슨한 국적 등록을 활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 책임자 곤잘로 사이즈와 톰 키팅은 “선박이 까다롭지 않은 절차로 국적을 얻고, 소유자를 숨겨 제재를 피해 돌아다니는 환경이 완전히 새로운 운항 생태계를 이뤘다”면서 “국적이 취소된 선박도 며칠 만에 다른 깃발을 달아 계속 운항하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림자 함대’라 불리는 선박 무리는 러시아가 서방의 원유 가격 제한을 피해 전쟁 자금을 마련하는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런 국기 변경을 막을 권한과 장치가 부족해 제재 회피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다.
주요 선박 등록국인 파나마와 라이베리아는 외교 압력에 따라 감독을 강화했다. 파나마는 2019년 이후 650척 이상 선박 등록을 취소했고, 2025년 3월 한 달 동안만 100척 넘는 제재 위반 선박을 말소했다. 하지만 카메룬·감비아·온두라스·시에라리온·탄자니아 등 작은 국가들은 여전히 느슨한 감독과 허술한 심사로 제재 회피 선박을 받아들이고 있다. 민간 선박 등록 대리업체가 실제 국적국 감독을 피해 운영되는 문제도 있다.

보고서는 국제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함께 해상 운송 시스템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자 함대는 계속 불어나 불법 운송과 제재 회피를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444척의 그림자 함대 선박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항만 출입과 서비스를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고질적인 국기 변경과 허술한 선박 등록 제도의 근본 개선 없이는 제재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번 보고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지 3년 넘게 국기 변경을 통한 제재 회피가 꾸준히 늘면서 국제 해상 운송 관리 체계 강화가 시급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과 EU 등 주요 국가도 이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으나 국제사회 합의와 제도적 보완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