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약업계를 상대로 최대 100%에 달하는 수입 의약품 관세 부과를 경고했다가 이를 지렛대 삼아 약가 인하와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폴리티코, 로이터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화이자 합의와 확산 압박
이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화이자와의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화이자는 미국 내 의약품 제조 능력 강화를 위해 700억 달러(약 96조4000억 원)를 투자하고 ‘TrumpRx.gov’라는 신규 구매 플랫폼을 통해 주요 1차 진료용 치료제와 일부 전문의약품을 할인된 가격에 공급하기로 했다. 대신 3년간 예정된 제약 관세에서 면제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합의를 다른 글로벌 제약사에도 확대할 계획임을 시사하며 협상에 응하지 않는 기업에는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할 일은 그들에게 맞먹는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아무도 그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전방위 ‘딜메이킹’ 전략
그러나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의 제약사 압박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백악관은 일라이 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른 제약사에도 생산 확대와 본사 이전을 요구하고 있으며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조선·에너지·핵심 광물 등 20~30개 전략 산업 전반에서도 유사한 협상이 진행 중이다.
상무부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연방 부처들은 사실상 ‘딜 메이커’ 역할을 하며 관세 면제, 정부 지분 투자, 수익 보장 등을 조건으로 기업들에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상들이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 성과와 논란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값 인하라는 오랜 공약을 실현했다고 강조했지만 화이자 역시 관세 유예와 대규모 투자 효과를 동시에 챙겼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 입장에서는 정부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할 기회가 된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전통적 자유시장 원칙에서 벗어나 정부가 사실상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로 기울고 있다고 지적한다. 존 커피 컬럼비아대 교수는 “공화당 행정부가 민주당보다도 더 멀리 시장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주요 제약 생산국과의 무역 협상에서도 미국의 고율 관세 위협이 중요한 카드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차기 행정부에서 정책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기업들의 부담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