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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아시아 Z세대, 일자리 절벽에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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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아시아 Z세대, 일자리 절벽에 분노 폭발

AI·자동화에 일자리 증발…中·印·인니 청년실업률 17% 육박
'인구 보너스'의 역습…거리로 나선 Z세대, 고용 개혁 요구
일자리 절벽에 내몰린 아시아 Z세대가 거리로 나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AI와 자동화가 가속하는 고용 위기는 아시아 전역의 사회 불안을 키우는 뇌관이 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일자리 절벽에 내몰린 아시아 Z세대가 거리로 나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AI와 자동화가 가속하는 고용 위기는 아시아 전역의 사회 불안을 키우는 뇌관이 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최근 아시아 전역을 뒤흔든 청년 시위는 부패와 엘리트주의, 검열에 대한 분노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위기, 즉 재앙적 수준의 '일자리 절벽'이 도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6일(현지시각) 진단했다. 세기의 전환기에 태어난 Z세대는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자동화 물결과 급격히 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 앞에서 암울한 경제적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한때 번영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인구 보너스'가 이제는 오히려 사회 불안을 촉발하는 뇌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거세지는 반(反)세계화 흐름은 아시아 노동 시장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펴낸 '아시아의 청년 실업 문제 부상' 보고서에서 "아시아 일부 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국가 전체 평균보다 꾸준히 2~3배 높다"고 지적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마저 저임금·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만연하고, 자동화 물결에 밀려 언제 사라질지 모를 만큼 위태롭다.

문제는 아시아 인구 대국들에서 유독 심각하게 나타난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노동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수백만 명의 청년 인구를 흡수할 만한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16.5%에 이르며, 인도와 인도네시아 역시 각각 17.6%, 17.3%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청년 실업률 10.5%와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이다.

AI와 자동화, 청년 일자리를 삼키다

단순 실업률 외에 '불완전 고용' 문제도 심각하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고용이 불안정한 임시직에 의존한다. 이런 일자리는 대부분 불규칙하고 낮은 임금을 주며,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도 보장하지 못한다. 지난 8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국회의원 특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됐지만, 사회 전반의 광범위한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 문제로 번지면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긱 워커(gig worker)들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AI와 자동화 기술 발전은 이런 고용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오랫동안 청년층의 핵심 일자리 공급원 노릇을 했던 정보기술(IT) 서비스 부문이 자동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성장세가 꺾일 위기에 처했다. 전통적으로 청년들이 일해왔던 의류 공장, 자동차 조립 공장 같은 제조업 부문 역시 빠르게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새로 일할 기회가 급격히 줄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수천만 명의 청년들이 추가로 노동 시장에 진입한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앞으로 10년간 8400만 명, 인도네시아에서는 1270만 명의 신규 인력이 노동 시장의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중국 역시 올해 1200만 명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졸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미·중 무역 전쟁과 기술 혁신이 초래한 극심한 고용 한파다. 세계 무역 긴장, AI의 빠른 발전, 계속되는 고용 감소 추세 속에서 이들을 흡수할 충분한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경제 성장 둔화 같은 구조적인 문제 탓에 젊은 층의 불만이 커지면서 시위가 늘고 있으며, 2025년 상반기 중국 내 시위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성장만으론 역부족…구조 개혁 시급


수십 년간 아시아 지도자들은 '성장을 통한 안정'이라는 공식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성장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각국 정부는 청년 세대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도록 교육 제도를 뜯어고치고, 의미 있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산업 구조로 바꾸도록 서둘러야 한다. 학문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기업가 정신을 키우고, 직업 교육 확대와 청년 창업 지원 등을 통해 청년 역량을 키우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 구조 개혁 또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중국은 내수 소비와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려 했으나, 올해 상반기 성장의 3분의 1을 수출에 의존하며 여전히 과거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지만, 현재 성장률로는 만연한 불완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이 문제를 풀려면 현재보다 성장률을 두 배로 높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각국 정부는 사회 불안이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포함한 각종 대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정책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구조 개혁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다. 동시에, 청년들의 분노를 키우는 고질적인 부패와 연고주의를 없애는 구조 개혁을 함께해야만 정책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아시아 Z세대가 겪는 취업난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 안정과 미래 세대의 희망이 달린 중대한 현안이다. 이들 젊은 세대에게 단순히 일자리를 주는 것을 넘어, 정부와 사회가 함께 미래를 믿고 도약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