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규제·디지털 전환이 이끄는 성장…한·중·일 아시아 3국이 주도
LNG 추진선·스마트십 대세 속 AI 설계·자율운항 기술 경쟁 치열
LNG 추진선·스마트십 대세 속 AI 설계·자율운항 기술 경쟁 치열

지난 13일(현지시각) 시장조사기관 맥시마이즈 마켓 리서치(Maximize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2024년 1621억4000만 달러(약 231조 원) 규모였던 세계 조선 시장이 연평균 4.4% 성장해 2032년에는 2288억2000만 달러(약 326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업은 전 세계 물류와 해상 운송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산업이다. 상선과 군함을 비롯해 유조선, 벌크선, 컨테이너선, 여객선 등 다양한 선박을 건조하는 이 산업은 세계화가 빨라지고 해상 물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더 현대적이고 효율 높은 선박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었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고자 조선업계는 자동화 공정, 모듈식 건조 방식, 고장력강과 첨단 복합재료 같은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적극 도입하며 산업 혁신을 이끌고 있다.
친환경·스마트 기술, 시장 패러다임 바꾼다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가장 큰 동력은 국제해사기구(IMO)를 중심으로 한 환경 규제다. IMO 2020 황 함유량 상한 규제를 시작으로 더욱 엄격해지는 탄소 배출 규제는 조선사들에 액화천연가스(LNG) 추진 시스템, 하이브리드 엔진, 에너지 절감형 선체 설계 등 친환경 기술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비용 증가 요인을 넘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 시장을 선점할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우리나라 주요 조선사들이 친환경 선박 수주에서 앞서 나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향후 10년간 조선 시장은 '스마트'와 '자율'을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사물인터넷(IoT) 기반 항해 시스템, 예측 정비, 실시간 데이터 관찰 기능을 갖춘 스마트 선박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으며 선박의 운영 효율과 안전을 극대화하고 있다. 나아가 완전 자율 운항 선박을 상용화하려는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이러한 혁신은 기업 사이의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M&A)을 촉진해,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지키고 영향력을 넓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 혁신의 중심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3국이 있다. 이들 국가는 탄탄한 산업 기반, 숙련된 노동력, 넓은 항만망을 바탕으로 세계 조선 시장의 지배적 위치를 다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 건조 기술을 넘어 '디지털 조선소(Digital Shipyard)'를 세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선박 설계, 로봇 기술, 디지털 트윈을 통한 가상 실험 등은 생산성을 높이고 건조 과정의 실수를 줄이며 건조 기간을 단축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원자재·공급망 불안은 과제…R&D 투자로 돌파구
물론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철강 등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의 변동성, 세계 공급망의 불안은 여전히 조선사들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지정학적 긴장, 해상 안보 문제, 국가 간 무역 제한 조치 등은 군함과 상선 수요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미쓰비시중공업 등 세계 유수의 조선 기업들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핀칸티에리(Fincantieri),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BAE 시스템스(BAE Systems) 같은 방산과 특수선 분야의 강자는 물론, STX조선해양, 츠네이시 조선 등 각 분야 전문 기업들 역시 기술 혁신으로 경쟁력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 각국 정부 또한 보조금, 세금 혜택, 조선업 현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자국 해양 역량을 키우고 산업 경쟁력 확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새 선박 건조 시장뿐 아니라 기존 선박을 고쳐 쓰는 개조 시장의 성장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 설치, 배출가스 저감 장치 장착 등 강화된 환경 규제를 맞추려는 개조 수요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조선 시장의 경쟁력은 규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해상 운송과 군용이라는 최종 목적에 맞춰 디지털 전환에 얼마나 앞서나가며, 지속 가능한 해운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