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5, 미해결 문제 푼 게 아니라 인터넷 '긁어오기'…LLM '패턴 맞추기' 한계 노출
2029년까지 1150억 달러 소진…자체 칩·클라우드 부재 속 '세입자' 신세, 경영 난제 수면 위로
2029년까지 1150억 달러 소진…자체 칩·클라우드 부재 속 '세입자' 신세, 경영 난제 수면 위로

사건의 발단은 주말 동안 오픈AI의 수석 과학자들이 보인 당황스러운 실수에서 시작됐다. 오픈AI의 케빈 웨일(Kevin Weil) 과학 담당 부사장은 X(옛 트위터)에 "GPT-5가 이전에 풀리지 않았던 '에르되시 문제' 10개를 방금 풀었다"는 글을 흥분된 어조로 게시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곧바로 거짓으로 드러났다. GPT-5는 제1원칙(first principles)에 기반해 추론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이미 공개된 답을 긁어와 마치 스스로 해결한 것처럼 제시했을 뿐이다. 해당 웹사이트(Erdosproblems.com) 운영자인 수학자 토머스 블룸은 X를 통해 "이는 극적인 왜곡"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그는 해당 문제들이 사이트에 '미해결(open)'로 표시된 까닭은, 자신이 답이 실린 기존 연구 논문들을 인지하지 못해 사이트를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GPT-5의 결과가 기존 연구를 인용한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건 극단적인 오해이자 잘못된 표현이다"라고 거듭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웨일 부사장과 다른 연구원들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추론인 척'한 LLM…AGI 신화의 균열
오픈AI는 그간 챗GPT의 기반 기술인 LLM이 AGI로 가는 가장 유력한 경로라고 주장해왔다. AGI는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이론적 분기점을 의미한다. AGI에 대한 장밋빛 야망은 오픈AI(기업가치 5000억 달러)나 엔비디아(시가총액 21일 기준 4조 5000억 달러) 같은 기술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가치를 정당화하는 근거였다.
하지만 이번 '에르되시 오류'는 생성형 AI 붐을 이끄는 LLM이 진정한 추론이 아닌 '착시 추론(pseudo-reasoning)'에 기반하고, 실제로는 '추론에 능숙한 척'할 뿐이며, 본질적으로는 '미화된 패턴 맞추기 도구'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AI 산업의 '거품(버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 과도한 기대가 'AI 겨울(AI winter)'을 초래했던 전례가 떠오른다는 지적이다.
'세입자' 신세의 막대한 비용…5000억 달러 가치의 아킬레스건
이러한 기술 한계에 대한 의구심은 회사의 재무 압박과 맞물려 커지고 있다. 오픈AI의 비용은 하늘로 치솟는다. 회사는 2029년까지 1150억 달러(약 164조 원)의 현금을 소진할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수익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올해 총매출이 약 130억 달러(약 18조 원)로 예상되는 가운데, 2030년까지 한 해 2000억 달러(약 285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글이나 메타플랫폼과 달리, 현금 흐름을 뒷받침할 수익성 높은 기존 사업도 없다. 최근 오라클과 2027년부터 5년간 3000억 달러(약 428조 원)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 역시 오픈AI의 비현실적인 수익 목표 달성을 전제한다. 막대한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 공개(IPO)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막대한 비용 구조의 근본 원인은 오픈AI가 핵심 기반(인프라)을 소유하지 못하고 '세입자' 신세에 머물러 있어서다. 오픈AI는 엔비디아로부터 막대한 양의 칩을 구매하고 있지만, 아직 자체 칩을 보유하지 못했다. 반면 경쟁사인 아마존은 '트레이니엄'과 '인퍼런시아' 칩을 오픈AI의 경쟁자인 앤스로픽에 제공하고, 구글 역시 자체 칩을 가졌다. 오픈AI는 최근 브로드컴과 100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의 맞춤형 칩 생산 계약을 발표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클라우드 플랫폼이 없는 것은 더 심각한 약점이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숙한 클라우드 사업과 달리, 오픈AI는 자체 플랫폼이 없다. 올트먼 CEO가 1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야심 차게 발표했던 5000억 달러(약 713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부지 선정, 자금 조달, 전력 확보 문제로 이미 늦어지고 있다.
경영 구조 자체도 불안정하다. 오픈AI는 올해 말까지 공익 기업(public benefit corporation)으로 전환을 완료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 않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수익 공유 재협상 외에도, 캘리포니아와 델라웨어 규제 당국을 만족시켜야 하는 법률 난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90억 달러(약 27조 원)의 조건부 자금 지원이 위태로울 수 있다.
경쟁 환경도 녹록지 않다. 최신 모델 GPT-5에 대한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고, AI의 초기 핵심 사용처였던 코딩 분야에서는 앤스로픽의 '클로드'가 챗GPT보다 낫다는 평가다. 구글은 자사 '제미나이' 챗봇을 안드로이드와 크롬 브라우저에 깊숙이 통합하고, 애플 역시 구글과 협력해 '시리'의 지능을 높이고 있다. 오픈AI가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넘어설 마땅한 플랫폼이 없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2차 주식 매각에서 인정받은 5000억 달러(8월 대비 2000억 달러 늘어난)라는 기업 가치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신규 자금 상당 부분이 과거 투자 실패 기록이 있는 소프트뱅크그룹에서 나온다는 점은 '탄광 속 카나리아'(위험의 징조)로 풀이되기도 한다. 오픈AI를 현재의 위치로 이끈 최고 인재들 상당수가 회사를 떠나 경쟁사로 합류하거나 창업에 나선 것도 현실이다.
물론 챗GPT는 전 세계 인구 10%가 사용하며 검색 시장을 대체하고 있지만, 오픈AI 연구원들 스스로가 '전 세계 지식을 재조합(remix)'하는 챗GPT의 능력과, 과학 지식의 최전선을 개척하는 '진정한 추론'이나 '발견(discover)'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AI의 진정한 진보를 위해선 현재의 생성형 AI 접근을 넘어 '뉴로심볼릭(neurosymbolic)' 방식 등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질적 성과보다 '믿음'과 '선전'이 AI 붐을 이끄는 현실에서, 올트먼 CEO는 유망한 기술과 거침없는 수사를 결합해 기업 가치를 성층권으로 띄운 일론 머스크의 방식을 따르는 듯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의 무게를 감당하고 약속을 이행해야 할 때다. 오픈AI의 거대한 도박에 올트먼 CEO가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밤이 계속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