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달러' 투자 계획, 재원 불투명…파트너사 동반 위험 노출
엔비디아 '95% 아성'은 견고…AI 반도체 다극화 경쟁 '신호탄'
엔비디아 '95% 아성'은 견고…AI 반도체 다극화 경쟁 '신호탄'

물론 이러한 파트너십 체결에도 AI 생태계 전반에 걸친 엔비디아의 지배력은 당분간 견고할 전망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데이터를 인용한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현재 AI 칩 시장의 약 95%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견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AI 학습 데이터센터가 엔비디아의 H100, H200 계열 칩에 의존하고 있다. AI 개발을 둘러싼 막대한 자본 유입 속에서 다른 하드웨어 공급업체들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으나, 엔비디아는 여전히 시장의 중심축 역할을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 고유의 '쿠다(CUDA)' 생태계와 소프트웨어 스택이 구축한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 그리고 파이토치(PyTorch)나 텐서플로(TensorFlow) 같은 주요 AI 프레임워크와의 높은 최적화 수준은 다른 공급업체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기술적 해자다.
하지만 업계 전반에서는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를 견제할 대안을 향한 갈증이 뚜렷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AMD가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오픈AI가 AMD와의 협력을 결정한 것은 엔비디아 중심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첫 대형 실증 사례로 평가된다. AMD는 오픈AI를 위한 맞춤형 AI 가속기 개발에 참여하며, 차세대 '인스팅트(Instinct) MI400' 시리즈 기반 칩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협력은 가속화되는 'AI 군비 경쟁' 속에서 AI 칩 공급망을 다각화하려는 업계의 광범위한 추세를 반영하는 핵심 지표다.
'1조 달러' 야망, 냉혹한 자금 조달 현실
오픈AI는 현재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2030년까지 1조 달러(약 1400조 원) 이상을 AI 인프라에 투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급격한 기술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는 다른 거대 기술 기업들의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AI 컴퓨팅 성능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다수의 공급업체가 이 팽창하는 시장에 뛰어들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오픈AI의 '수조 달러' 규모의 야망은 냉혹한 자금 조달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비상장 기업인 오픈AI는 재무 세부 정보를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재정 상황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자금 조달의 안정성을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장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오픈AI의 야심 찬 투자 계획이 과연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픈AI가 운영하는 데이터 센터가 최대 26GW의 전력을 소비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앞으로 8년 내 구축하려는 거대 인프라 구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25년 예상 매출이 약 130억 달러(약 18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나, 이 거대한 계획을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익성 확보 또한 최소 2029년은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파트너사의 '장밋빛 전망'과 '높은 위험'
최근 성사된 브로드컴과의 거래는 이러한 높은 불확실성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브로드컴은 오픈AI 전용으로 설계된 ASIC(특수 목적용 칩) 개발에 착수했다. 오픈AI는 이 맞춤형 칩을 통해 처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장기적으로 GPU 의존도와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브로드컴의 이러한 결정은 재무 미래가 불투명한 고객을 상대로 막대한 자원 투입을 약속한 셈이다.
브로드컴의 칩 설계는 오픈AI의 훈련 인프라에 고도로 특화되어 있어, 만약 오픈AI가 자금난 등 난관에 부딪힌다면, 브로드컴이 구축한 AI 컴퓨팅 인프라는 다른 용도로 쉽게 전환하기 어려워 그 위험 부담은 고스란히 브로드컴이 떠안아야 한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 때문에 브로드컴의 재무 위험 직접 노출 수준이 엔비디아나 AMD보다 오히려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하며, 업계의 급성장 이면에 형성된 복잡한 상호 의존 관계를 지적했다.
오픈AI와의 긴밀한 협력은 칩 제조사들에게 폭발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장밋빛 전망'인 동시에, 제한된 재무 투명성과 결부된 '높은 위험'을 동시에 안겨주는 셈이다. 오픈AI가 과연 원대한 추진 계획을 현실화하고 대규모 투자 약속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AMD와 브로드컴 같은 핵심 공급사는 물론 AI 생태계 전체에 걸쳐 중대하고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난제로 남아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오픈AI가 내세운 미래상만큼 자금 조달 속도가 따라잡을 수 있는가"를 앞으로 AI 하드웨어 경쟁 구도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분석한다.
업계에서는 오픈AI의 이번 공급망 다변화 시도를 단기로는 엔비디아 의존도에 따른 전략상 위험을 관리하고, 장기로는 AI 인프라 자립화를 위한 필수 단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 조달의 어려움, 엔비디아 CUDA 생태계의 견고함, 막대한 전력 인프라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오픈AI가 이른 시일 내에 '탈(脫) 엔비디아'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도 이번 움직임은 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엔비디아 일극 체제에서 다극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