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깬 '무어의 법칙'…'칩렛'이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
日, '장비 점유율 30%' 자신감…라피더스 2nm에 '국가 명운' 걸었다
日, '장비 점유율 30%' 자신감…라피더스 2nm에 '국가 명운' 걸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AI 반도체, 특히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있다. AI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미국 엔비디아는 AI 수요를 독점하며 시가총액 4조 6300억 달러(약 6700조 원)를 기록 중이며, 한때 5조 달러(약 7200조 원)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폭발적인 성능 향상 요구는 업계의 오랜 성장 공식이었던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도가 24개월마다 2배가 된다)'을 한계로 내몰고 있다. 회로 선폭을 나노미터(nm) 단위로 좁히는 미세화 공정은 막대한 개발 비용과 물리적 한계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무어의 법칙'을 이어갈 차세대 기술로 '칩렛(Chiplet)'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닛케이가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반도체 산업은 소자(디바이스) 제조사와 제조 장비 산업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으로 움직인다. 특히 일본은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 약 30%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여전히 막강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AI와 칩렛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일본은 자국이 보유한 강력한 장비 경쟁력을 지렛대로 과거의 '반도체 영광'을 되찾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칩렛', 미세화 한계 돌파구
'칩렛'은 단일 칩(Monolithic)에 모든 기능을 집적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능별로 분리된 여러 개의 작은 칩(칩렛)을 별도로 제조한 뒤 이를 기판 위에서 하나로 결합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의미한다.
미세화 공정이 5nm 이하로 내려가면서 천문학적인 비용 상승과 낮은 수율(불량률) 문제는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최대 요인이었다. 칩렛 구조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CPU, GPU, I/O 등 각기 다른 기능을 최적의 공정에서 따로 생산한 뒤, 불량 없는 칩들만 골라 조립할 수 있어 비용과 수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AI 시대에 요구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GPU와 수평으로 연결하는 TSMC의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나,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인텔의 '포베로스(Foveros)', 삼성전자의 '세인트(SAINT)' 기술 등이 모두 칩렛 구현을 위한 핵심적인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AI 반도체 경쟁이 사실상 '첨단 패키징' 경쟁으로 귀결되면서, 이 분야의 기술력 확보가 곧 시장 패권을 좌우하게 됐다. 일본이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칩렛 구현을 위해서는 웨이퍼에 막을 입히고(성막), 깎아내고(식각), 불량을 검사하는 전후(前/後)공정 장비의 성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日 라피더스의 야망, 'AI·경제 안보' 동시 겨냥
두 번째 전략은 이 장비 경쟁력을 토대로 자국 내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태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AI 및 반도체 분야에 10조 엔(약 94조 원) 이상의 공적 지원을 선언했다.
이 야심 찬 계획의 중심에는 차세대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Rapidus)'가 있다. 토요타, 소니, 키옥시아 등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라피더스는 정부로부터 이미 1조 7200억 엔(약 16조 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라피더스는 TSMC(대만)와 삼성전자(한국)가 주도하는 3nm 이하 최첨단 공정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2027년까지 2nm(나노미터) 공정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현재 업계의 기술 로드맵을 뛰어넘는 공격적인 목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목표를 넘어, 반도체를 '경제 안보 물자'로 규정한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대만과 한국에 집중된 최첨단 로직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에 확보하겠다는 국가적 전략이다.
물론 메모리 분야의 키옥시아(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생산)와 전력·차량용 반도체의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역시 정부 지원을 받으며 증산을 이어가고 있다. AI가 촉발한 기술 혁신과 칩렛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일본에게 과거의 패권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0조 엔 베팅'의 성공 여부에 일본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