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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글로벌 톱5도 꼼짝 못한다"…반도체 '소재의 소재' 쥔 70% 독점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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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글로벌 톱5도 꼼짝 못한다"…반도체 '소재의 소재' 쥔 70% 독점 기업

도요고세이, 삼성·TSMC 공급망 최상단 포식자…불순물 '제로' 도전
염해(鹽害) 입은 땅을 물류 허브로 '역발상'…日 정부 "경제안보 핵심" 지정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들이 멈추면 글로벌 반도체 생산 라인이 마비되는 '숨은 지배자'들이 존재한다. 일본의 도요고세이공업(東洋合成工業·이하 도요고세이)이 바로 그런 기업이다. 이 회사는 반도체 회로 형성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PR)의 핵심 원료, '감광재' 시장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다. 도쿄오카공업(TOK), JSR 등 쟁쟁한 글로벌 소재 기업들조차 도요고세이 없이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저력은 여전히 반도체 산업의 가장 깊은 곳을 틀어쥐고 있다.

'PR 5대장' 지배하는 '슈퍼 을'


반도체 노광(Lithography) 공정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시장은 일본 기업의 독무대다. 도쿄오카공업, JSR, 신에츠화학, 스미토모화학, 후지필름 등 이른바 '빅5'가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도 이들로부터 소재를 공급받는다.

하지만 이 거대 기업들조차 철저히 '을(乙)'이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포토레지스트의 원재료인 '감광재'를 구매할 때다. 도요고세이는 이 감광재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70%라는 압도적 지위를 구축했다. 사실상 독점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빛에 반응해 성질이 변하는 민감한 화학 물질이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불순물 관리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도요고세이 측은 자사의 품질 관리 기준을 "일본 열도 전체 면적에 10엔짜리 동전 하나 크기의 오염도 허용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묘사한다. 300mm 웨이퍼 위 10나노미터(nm)의 미세 먼지조차 용납하지 않는 극한의 순도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기무라 유진 사장은 "포토레지스트 생산에 필요한 감광재, 고순도 용제(Solvent), 폴리머(수지) 등 모든 재료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곳은 도요고세이가 유일하다"고 단언했다.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수직계열화와 초격차 기술 장벽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이다.

물류로 벌어 반도체 쏘는 '자금 선순환'


도요고세이가 반도체 소재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특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있다. 이 회사는 단순한 제조사가 아니라, 타사의 화학제품을 보관·정제·운송하는 '화학 물류 비즈니스'의 강자다.

지바현에 위치한 다카하마 유조소는 도쿄돔 면적과 맞먹는 4만3000㎡ 부지에 65기의 거대 저장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월 50척의 선박과 3000대의 탱크로리가 드나들며 가동률은 95%에 육박한다. 주목할 점은 단순 보관이 아니라 '분석 및 정제 능력'이다. 채산성 문제로 범용 화학제품 생산을 줄인 일본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저순도 원료를 수입하면, 도요고세이가 이를 분석하고 정제해 고순도 제품으로 탈바꿈시킨다. 수입부터 합성, 출하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능력은 고객사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락인(Lock-in) 효과를 낳았다.

이 물류 사업은 도요고세이의 든든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다. 반도체 소재 산업은 막대한 R&D 비용과 경기 변동 리스크가 크지만, 도요고세이는 물류 사업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과감한 기술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다.

버려진 땅에서 핀 '역전의 기술'


도요고세이의 역사는 '전화위복'의 연속이다. 1954년 의약품용 화학제품 제조사로 출발했으나, 1963년 공장 확장을 위해 매입한 부지가 염해(鹽害) 우려가 있는 쓸모없는 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창업자 기무라 마사키는 좌절하는 대신 발상을 전환해 그 땅을 유조소로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회사를 지탱하는 물류 사업의 시작이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위기 때는 반도체 소재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피벗(사업 전환)'을 감행했다. 국내 시장이 미성숙했던 시절, 과감히 미국 시장을 먼저 공략해 레퍼런스를 쌓았고, 이는 훗날 반도체 미세화 트렌드와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다. 현재 전체 매출의 60%가 감광재 사업에서 나온다.

대체 불가한 '경제안보 방파제'


반도체 공정은 수백 번의 화학 반응과 튜닝(조율)의 결과물이다. 포토레지스트 제조사들이 수십 년간 맞춰온 원료 레시피를 바꾸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막대한 시뮬레이션 비용과 수율 저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도요고세이 제품을 대체할 기업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도요고세이는 일본 재무성의 '외국인 투자 사전 심사 중점 기업' 리스트에 올라 있다. 적대적 M&A나 기술 유출로부터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소부장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공급망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일본의 '슈퍼 을'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도요고세이의 사례는 기술 초격차가 어떻게 기업의, 나아가 국가의 안보 자산이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