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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흐름이 가리키는 방산 권력의 지각변동… 한국, ‘구매자’에서 ‘파트너’로 진화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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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흐름이 가리키는 방산 권력의 지각변동… 한국, ‘구매자’에서 ‘파트너’로 진화할 시간

미(美) 무기 수출 지도, 중동에서 유럽으로 20년 만의 대이동… 86% 미국 의존 한국에 던지는 ‘자립과 동맹’의 이중 과제
세계의 무기 흐름이 이동하고 있다. 이는 동맹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차기 패권 전쟁의 전선이 어디에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행지표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세계의 무기 흐름이 이동하고 있다. 이는 동맹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차기 패권 전쟁의 전선이 어디에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행지표다. 이미지=GPT4o
세계의 무기 흐름이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역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동맹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차기 패권 전쟁의 전선이 어디에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선행지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0~2024년 무기 거래 데이터는 냉전 이후 가장 극적인 지정학적 구조 변화를 시사한다. 미국의 무기 수출은 지난 5년 대비 21% 증가했고, 그 종착지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동(33%)이 아닌 유럽(35%)이 차지했다.

인도 매체인 와이언은 21(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트럼프 2.0 시대를 앞둔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글로벌 안보 지형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미국 무기의 5.3%를 수입하는 한국도 역시 전략적 전환을 검토해야 할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으로 쏠린 미국의 창(), 중동의 미묘한 퇴조


가장 극적인 변화는 단연 유럽이다. 우크라이나는 단숨에 미국 무기 수출의 9.3%를 차지하는 핵심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주목할 점은 이 물량의 71%가 미군의 기존 재고에서 빠져나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전시 비축 물량이 유럽 전선에 묶여 있음을 의미하며, 유사시 타 지역에 투사할 미국의 즉각적인 지원 능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경고등이기도 하다. 나토(NATO)의 결속력 강화와 유럽의 재무장 강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수(常數)가 되었다.

전통적 '큰손'이었던 중동의 비중 축소도 큰 충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전히 전체의 12%를 가져가는 미국의 최대 단일 고객이지만, 중동 전체의 비중은 급격히 줄었다. 이는 미국의 '()중동' 기조와 사우디·이란의 관계 개선, 걸프 국가들의 공급선 다변화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카타르(7.7%)와 쿠웨이트(4.4%)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전략적 무게추는 확실히 인도·태평양과 유럽으로 분산되고 있다.

아시아의 재편, 일본·호주의 급부상과 대중(對中) 포위망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체 미국 무기의 28%를 흡수하며 유럽 다음가는 전략 지역임을 입증했다. 일본(8.8%)은 전후 최대 규모의 군비 증강에 나서며 미국산 무기 수입량을 이전 기간 대비 93%나 늘렸다. 호주(6.7%) 역시 오커스(AUKUS) 체제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며 미 동맹의 핵심 축으로 격상됐다.

일본과 호주의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안보 아키텍처가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거리 타격 능력과 해양 통제권을 강화하는 이들의 행보는 한국에게 지역 내 안보 주도권 경쟁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겨준다.

한국의 딜레마, 86%의 미국 의존도와 줄어든 수입량


한국의 데이터는 복합적인 신호를 보낸다. 한국은 미국 무기 수출의 5.3%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지만, 전체 수입량은 이전 5년 대비 24% 감소했다. 이는 국산 무기 개발(K-방산)의 성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취약점이 존재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주요 무기 도입에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86%에 달한다. 이는 한국군 전력의 핵심인 항공·미사일 방어 체계가 미국 공급망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유럽과 중동의 주문 폭주로 미국의 방산 생산 라인에 병목 현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전력 증강 계획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고 싶어도 제때 못 사는"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략적 파트너로의 도약


이러한 글로벌 무기 흐름의 변화는 한국에게 전략적 기로를 의미한다. 미국의 생산능력이 한계에 달하고 우선순위가 유럽으로 쏠린 지금,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단순한 구매자를 넘어 미국의 안보 부담을 덜어주는 공급 파트너이자 독자적 억제력을 갖춘 플레이어로 변모해야 한다.

첫째, 핵심 자산의 국산화와 유지보수(MRO) 역량 강화다. 86%에 달하는 미국 무기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이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안보 생존의 문제다. 미국산 장비의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부품 생산과 정비를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MRO 거점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

둘째, K-방산의 글로벌 공급망 진입이다. 유럽이 재무장에 나섰지만, 미국 혼자서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폴란드 수출로 증명된 한국의 신속한 생산 능력과 미국 무기와의 높은 상호운용성은 한국이 서방 자유 진영의 무기고(Arsenal)’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한미 동맹을 일방적 수혜 관계에서 상호 보완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는 열쇠가 된다.

셋째, 비대칭 억제력의 독자적 확보를 통한 외교 공간 창출이다. 일본과 호주가 미국의 전략 자산에 편승할 때, 한국은 독자적인 3축 체계 고도화와 다영역 작전 능력을 통해 우리만의 전략적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미국 무기의 흐름이 바뀐 것은 세계 질서가 바뀌었다는 신호다. 변화된 질서 속에서 한국은 수동적인 고객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판을 읽고 공급망을 주도하는 핵심 파트너가 될 것인가. 이제 수입 명세서 변화가 보여주는 경고를 기회로 바꿀 골든타임이 한국 앞에 서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