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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호실적에도 1600조 ‘빚투’가 발목... “AI 버리고 전력망·헬스케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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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호실적에도 1600조 ‘빚투’가 발목... “AI 버리고 전력망·헬스케어 산다”

S&P 500, 엔비디아 훈풍 기대 꺾고 급락... 11월 상승분 반납
비트코인 33% 폭락에 ‘마진콜’ 공포... 기술주 투매 도미노
“닷컴버블 데자뷔” 경고 속 JP모건 “전력 인프라 슈퍼사이클 주목”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 발표에도 투매와 변동성 확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고치에 달한 레버리지(빚투) 청산과 암호화폐 급락이 겹치며 시장이 발작을 일으킨 탓이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 발표에도 투매와 변동성 확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고치에 달한 레버리지(빚투) 청산과 암호화폐 급락이 겹치며 시장이 발작을 일으킨 탓이다. 이미지=GPT4o
미국 월스트리트가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발표에도 이어진 원인 모를 투매와 변동성 확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대장주가 시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사상 최고치에 달한 레버리지(빚투) 청산과 암호화폐 급락이 겹치며 시장이 발작을 일으킨 탓이다. 투자자들은 기술주를 던지고 헬스케어와 전력 인프라 등 실적 호전주로 피난처를 옮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배런스(Barron's)는 지난 21(현지시간) 시장의 격동을 보도하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가 11월 한 달간 6% 이상 하락해 지난 4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검은 수요일'의 악몽... 누구도 예상 못한 급락


월가에서는 지난 19일 장 마감 후 발표된 엔비디아의 견조한 실적이 다시 한번 증시 랠리를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S&P 500 지수는 불과 두 시간 만에 2%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11월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며 3.5%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시장 변동성 전문가인 카이로스 투자자문(Kairos Investment Advisors)의 라몬 베라스테기 설립자는 "시장이 폭락할 때 수익을 내는 전략을 운용하지만, 이번 상황은 정말 당황스러웠다""솔직히 누구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장의 배경으로 '이익 실현 욕구''과도한 레버리지'가 충돌한 것을 꼽는다. 핀라(Finra) 집계에 따르면 미국 증권 계좌의 차입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 11000억 달러(1619조 원)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모닝스타 분석을 보면 레버리지 주식 펀드 자산 역시 올가을 1400억 달러(206조 원) 이상으로 급증해 1990년대 집계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QVR 어드바이저스의 벤 아이퍼트 매니징 파트너는 "과도한 빚을 낸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와 기술주를 동시에 사들였다가, 암호화폐 가격이 무너지자 마진콜(증거금 부족분 상환 요구)에 대응하려 기술주까지 던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사모대출 연쇄 충격... '닷컴 버블' 망령 되살아나나


시장의 불안을 키운 또 다른 뇌관은 암호화폐와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다. 지난 1012만 달러(17600만 원)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지난 21일 기준 84535달러(12400만 원) 선으로 주저앉으며 고점 대비 33% 폭락했다. 암호화폐 관련 기업인 스트래티지(Strategy)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37%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자동차 부품 대기업 퍼스트브랜즈(First Brands)110억 달러(161900억 원) 규모의 부채 문제로 흔들리면서, 월가의 새로운 수익원이었던 사모신용 시장에 대한 공포가 확산했다. 런던의 헤지펀드 푸리에 자산운용의 올랜도 제메스 최고투자책임자(CIO)"과거 2~3%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8~10%의 고금리로 빚을 갈아타야 하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의 상황을 떠올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AI 버블은 없다"고 일축했지만, 시장은 과거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의 사례를 주목한다. 2000년 당시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2의 산업혁명"을 외쳤으나, 1년 뒤 주가는 67% 폭락했다. 존스트레이딩의 마이클 오루크 수석 시장 전략가는 고객 메모에서 "지금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경고했다.

기술주 지고 헬스케어 뜬다... 일라이 릴리 20% 급등


기술주가 비틀거리는 사이, 투자자들은 실적이 검증된 전통 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헬스케어 섹터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비만 치료제 열풍을 주도하는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이달 들어서만 주가가 20% 이상 뛰어오르며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솔벤텀(Solventum), 리제네론(Regeneron) 등 다른 헬스케어 종목들도 10% 이상 상승했다. 폐기물 처리 업체인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aste Management)나 보험사 올스테이트(Allstate) 같은 경기 방어주도 강세다.

배런스는 "기술주 중심의 '노벰버(No-vember)' 장세에서 헬스케어와 산업재 등 소외됐던 섹터가 부활하고 있다""특정 기술주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AI 투자의 대안... 전력망·인프라 '슈퍼사이클' 주목


전문가들은 AI 테마 자체를 포기하기보다는 투자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기업만 볼 것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수적인 전력망과 인프라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JP모건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AI가 촉발한 전력 수요와 데이터센터 확장이 다년간 이어질 '인프라 슈퍼사이클'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발몬트(Valmont), 미리온(Mirion)과 같이 전력망 현대화나 원자력 발전 관련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즈호 증권의 조던 클라인 애널리스트 역시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지 말고 2026년까지 이어질 데이터센터 붐에 올라타야 한다"며 블룸에너지(Bloom Energy) 등을 유망 종목으로 꼽았다. 그는 "엔비디아나 브로드컴 같은 핵심 종목은 변동성에도 쥐고 가야 할 주식"이라면서도 인프라 관련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장은 AI라는 거대한 흐름은 인정하되, 과열된 빅테크에서 한발 물러나 실질적인 수혜가 예상되는 인프라와 방어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