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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 1.8조 vs TSMC 19억…美 파운드리 '극과 극'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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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 1.8조 vs TSMC 19억…美 파운드리 '극과 극' 성적표

오스틴, 감가상각 끝난 '현금 제조기' 부활…본사 적자 메웠다
TSMC, 3나노 도입하자 '수익 절벽'…장중머우의 '고비용 경고' 현실로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아래 펼쳐진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생산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희비가 2025년 3분기 극명하게 갈렸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2조 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내며 부활한 반면, TSMC 애리조나 법인은 이익이 99% 증발하며 사실상 '제로 마진' 충격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승패가 아닌 '시차(時差)의 문제'로 본다. 이미 본전을 뽑은 삼성의 '성숙 공정'과, 이제 막 돈을 쏟아붓기 시작한 TSMC의 '첨단 공정'이 빚어낸 구조적 착시라는 분석이다.

매출 36% 빠졌는데 이익은 '사상 최대'


20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아시아와 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오스틴 법인(SAS)은 3분기 매출 7683억 원, 순이익 1조8700억 원을 기록했다.
기이한 성적표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6%나 곤두박질쳤는데, 순이익은 오히려 지난해 연간 벌어들인 돈을 한 분기 만에 뛰어넘었다. 제조업에서 매출 급감 속에 이익이 폭증하는 '불황형 흑자'의 전형이다.

비결은 '감가상각 종료'에 있다. 1990년대 후반 설립된 오스틴 공장은 주요 설비 투자가 마무리된 상태다. 버는 족족 이익으로 남는 '현금 제조기(Cash Cow)'가 됐다는 뜻이다. 20년 넘게 쌓은 삼성의 현지 비용 통제 노하우가 불황 속에서 빛을 발하며, 상반기 고전했던 본사 파운드리 사업부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줬다.

TSMC 덮친 '미국병'…99% 증발한 이익


반면 ‘파운드리 제국’ TSMC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대만 공상시보에 따르면 TSMC 미국 법인의 3분기 이익은 고작 4100만 대만달러(약 19억 원). 직전 분기(1985억 원) 대비 99%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삼성 오스틴이 1조8000억 원을 쓸어 담을 때, TSMC는 겨우 적자를 면한 수준이다.

원인은 '램프업(생산 증대)의 저주'다. 애리조나 2공장에 3나노(N3) 최첨단 장비가 들어가면서 감가상각비 폭탄이 터졌다. 여기에 "미국 제조 비용은 대만보다 50% 비싸다"던 장중머우(張忠謀) 창업자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 고임금, 노조 갈등, 본사 인력 파견 비용 등 이른바 '미국병'이 TSMC의 자랑인 압도적 마진율을 갉아먹고 있다.

오스틴이 번 돈, '테일러' 방어에 쓴다

냉정히 말해 이번 승부는 '체급이 다른 싸움'이다. 삼성 오스틴의 비교 대상은 TSMC 애리조나가 아니다. TSMC가 겪는 고통은 현재 짓고 있는 삼성의 '테일러 신공장'이 곧 겪어야 할 미래다.

다만 삼성은 전략적 우위를 점했다. 오스틴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벌어준 1조8000억 원의 현금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 '실탄'으로 테일러 공장의 초기 출혈을 막을 수 있다. 반면 미국 내 기반이 없는 TSMC는 맨땅에서 비용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삼성 '체질 개선' vs TSMC '진퇴양난'


삼성은 오스틴의 수익을 발판으로 19억 달러 규모의 재투자를 단행한다. 업계에선 이를 애플의 차세대 이미지 센서 수주를 위한 포석으로 본다. 낡은 공장을 고쳐 첨단 제품을 찍어내겠다는 실리 전략이다.

반면 TSMC는 진퇴양난이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을 인질로 2나노 공정 도입까지 압박하고 있다. 3나노만으로도 수익성이 바닥을 쳤는데, 더 비싼 2나노를 가져가는 건 재무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결국 3분기 성적표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삼성은 '구관'의 저력으로 버티기에 들어갔고, TSMC는 '신관'의 비용 청구서에 휘청이고 있다. 진짜 승부는 테일러 공장이 가동되고, TSMC 수율이 잡히는 2년 뒤다. 그때까지 누가 더 영리하게 '미국 비용'을 버텨내느냐가 승자를 가를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