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10개월, 셰일 증산·전쟁 프리미엄 소멸로 유가 방어선 붕괴
사우디, '점유율 전쟁' 만지작... 2014·2020년 '유가 폭락 사태' 재현 우려
韓 석유화학 '재고 손실' 비상... '킹달러' 탓에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는 반감 예상
사우디, '점유율 전쟁' 만지작... 2014·2020년 '유가 폭락 사태' 재현 우려
韓 석유화학 '재고 손실' 비상... '킹달러' 탓에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는 반감 예상
이미지 확대보기트럼프 취임 1년, '공언(公言)'은 '현실(現實)'이 되었다
지난 1월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일련의 '에너지 규제 철폐 행정명령'들은 11월인 현재, 구체적인 생산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미국산 원유의 '공급 쓰나미'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묶여있던 연방 토지 시추 허가가 풀리고 파이프라인 건설이 재개되면서, 미국 셰일 오일 생산량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유가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던 트럼프의 전략은 글로벌 유가를 강제로 끌어내리는 형태로 실현되었다.
둘째, '전쟁 프리미엄'의 소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속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과 중동의 긴장도가 관리 모드로 전환되면서, 유가 하단을 지지하던 지정학적 리스크는 사라졌다.
셋째, 무역장벽이 부른 '물동량 위축'**이다. 상반기부터 본격화된 보편 관세 조치는 글로벌 교역량을 뚜렷하게 감소시켰고, 이는 곧 산업용 에너지 수요의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구조적 변화와 비(非)OPEC의 반란
공급 과잉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브라질, 가이아나, 캐나다 등 비OPEC 산유국들은 트럼프의 '증산 레이스'에 동참하듯 경쟁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며 OPEC의 점유율을 잠식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수요 실종'이 결정타를 날렸다. 중국은 부동산 침체로 인한 내수 부진과 더불어, 전기차(EV) 보급 확대라는 구조적 전환을 통해 석유 의존도를 빠르게 낮춘다. IEA는 "2025년은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세가 멈춘 원년"이라고 평가했다.
사우디의 '증산'이 시작된다면... "유가 30불 시대"의 도래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OPEC+의 리더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가격 방어)'을 포기하고 '증산(점유율 회복)'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이는 과거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유가의 자유낙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2014년과 2020년의 악몽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2014년, 사우디는 급성장하던 미국 셰일 오일을 견제하기 위해 증산을 단행했고, 당시 100달러대였던 유가는 2016년 초 20달러대까지 폭락했다. 2020년 3월 팬데믹 초기에도 러시아와의 감산 합의 결렬 직후 증산 전쟁을 벌여 유가를 마이너스(WTI 기준)까지 끌어내렸다. 두 사례 모두 사우디가 "가격을 희생해서라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을 때 시장이 초토화됨을 증명한다.
'너 죽고 나 살자' 현재 사우디는 비OPEC 국가들에 시장 점유율만 뺏기는 '호구'가 되었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만약 사우디가 인내심을 잃고 수도꼭지를 연다면, 현재의 공급 과잉 상태에서 유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본격적인 치킨게임을 시작할 경우, 유가의 1차 지지선은 미국 셰일 기업들의 손익분기점인 50달러가 아니라, 사우디의 생산 원가에 가까운 30~40달러 선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일부 OPEC 회원국들은 쿼터를 어기고 몰래 증산하고 있다. 사우디가 이를 빌미로 'OPEC+ 체제 종료'를 선언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 순간, 유가는 단기간에 30% 이상 폭락할 수 있는 '진공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하락이 아닌 석유 시장의 패러다임이 '가격 관리'에서 '생존 경쟁'으로 바뀌는 신호탄이다.
한국 경제에 미칠 파급영향은, 저유가의 '착시'를 경계하라
유가 하락은 통상 원가 절감 요인이지만, '30~40달러 시대'가 온다 해도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웃을 수 없다. 유가 폭락은 곧 경기 침체의 신호이며, 이는 제품 가격 급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자급률 상승으로 수출길이 막힌 상황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대규모 재고 평가 손실(Lagging Effect)은 기업들의 실적을 짓누를 수 있다.
"킹달러에 묻힌 저유가 효과"도 관심사다. 유가 하락은 수입 물가 안정에 기여하며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을 확보해 준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미국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인한 '슈퍼 달러' 현상은 원-달러 환율을 1400원 중반대에 고착화시켰다. 달러로 사 오는 원유 가격은 내렸지만, 달러 자체가 비싸지면서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항공, 해운, 전력 다소비 제조업체들에게 유가 하락은 가뭄의 단비다.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와 무역수지 흑자 유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며, 반도체와 철강 등 핵심 산업의 원가 부담을 낮춰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최후의 방어막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5년 말, 우리는 트럼프의 '에너지 패권'과 사우디의 '점유율 전쟁' 가능성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리스크 앞에 서 있다. 정부와 기업은 단순한 저유가 대응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붕괴에 대비한 정교한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