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탈달러 아닌 탈위험"...韓, 자금 조달과 외교전략 수정 시급
미국 금융 패권 균열 조짐..."유럽 자금 시장이 새 기회이자 방파제"
미국 금융 패권 균열 조짐..."유럽 자금 시장이 새 기회이자 방파제"
이미지 확대보기본지는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이 12월7일 보도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유로화 조달 급증에 따른 미국 금융 패권의 균열 가능성 등 아시아 금융과 세계 금융 권력의 변화를 진단함과 동시에 이를 한국의 경제와 국익의 관점에서 긴급 분석했다.
블룸버그가 포착한 조용한 금융 지각 변동
블룸버그통신이 전하고자 한 핵심은 단순하다. 아시아가 더 이상 달러 하나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아시아·태평양 발행자들이 유로화 채권 비중을 크게 늘리며 유로화 자금 조달은 사상 최대 수준에 올라섰고, 유럽 공모 시장에서 아시아 발행이 가장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달러 표시 채권 발행 자체는 여전히 늘고 있지만, 비중은 줄고 있다. 이는 달러가 여전히 가장 큰 축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그 우위가 서서히 갉아 먹히고 있다는 이중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연방준비제도이상회를 둘러싼 정치적 압박, 그리고 그로 인한 달러 신뢰도의 약화가 깔려 있다. 투자자들은 점점 더 유로화 자산을 찾고, 아시아 발행자들은 그 수요를 따라 유로화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로화 급증의 본질은 탈달러가 아니라 탈위험이다
겉으로 보면 아시아의 유로화 조달 확대는 통화 구성이 바뀌는 현상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위험의 재배분이다. 아시아 발행자와 투자자들은 달러 하나에 얽힌 정치적 리스크, 관세 리스크, 통화정책 리스크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은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지만 적어도 통화정책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흔들리는 구조는 아니다. 유럽중앙은행의 결정 과정은 느리고 답답해 보일 때도 있지만, 바로 그 느림과 절차가 발행자와 투자자에게 일정한 예측 가능성을 준다.
유로화 조달이 늘어나는 것은 달러에 대한 감정적 이탈이 아니라 달러를 둘러싼 정치적 위험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두려는 냉정한 선택이다. 아시아는 이 과정을 통해 자산과 부채의 통화 구조를 보다 다원화하며 재무 구조의 충격 흡수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한국에게 열리는 기회: 조달 비용과 투자자 저변, 그리고 통화 다변화
이 변화는 한국에게 분명한 기회이기도 하다.
첫째, 한국의 금융기관과 대기업은 이미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신뢰를 쌓아온 발행자다.
이제까지는 달러 조달이 당연한 선택처럼 여겨졌지만, 시장 환경이 바뀐 지금은 유로화 조달을 체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유로화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통화 스와프 비용이 안정된 국면에서는 유로화로 자금을 조달한 후 원화로 환헷지를 해도 총 비용이 달러 조달보다 낮아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은행, 통신, 에너지, 인프라 기업들이 장기 자금을 확보하는 데 큰 이점을 줄 수 있다.
둘째, 한국 국채와 공기업채, 금융채도 유로화 발행을 통해 유럽 장기투자자와 연기금, 보험사라는 새로운 투자자 저변을 넓힐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외 금융 관계는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짜여 있었지만, 유럽이라는 세 번째 축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것은 한국의 금융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셋째, 한국이 원화 국제화라는 장기 목표를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중간 단계로서 유로화와의 연계, 유로화 조달과 원화 스와프 시장의 심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달러 일변도의 체제에서는 원화 국제화를 위한 실험 자체가 좁은 틀 안에 갇히기 쉽다.
동시에 커지는 리스크: 미국 금융 패권 균열이 한국에 던지는 과제
그러나 이 변화는 한국에 위험도 함께 안긴다. 미국의 금융 패권이 약화된다는 것은 곧 한국이 의존해 온 안전망의 한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달러 유동성 라인과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국제결제은행 체제를 중심으로 금융 안보를 설계해 왔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달러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금융 위기 때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했다.
달러 중심 체제가 균열을 보이면, 한국은 달러 유동성 위기와 미국 금융시장 변동성에만 대비하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럽 채권시장, 유로화 자금조달 시장, 그리고 유럽 금융감독체계의 변동이 한국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리스크는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은 군사 동맹과 달러 패권을 서로 연결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이 눈에 띄게 유로화 비중을 늘리고, 유럽 금융시장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를 전략적 균형 이동으로 해석할 경우 외교적 조정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유로화 전략은 탈미국이 아니라 금융 파트너의 다변화라는 메시지로 관리되어야 한다.
한국이 지금 준비해야 할 네 가지 전략 축
한국이 이 변화 속에서 국익을 지키고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축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 주요 정책금융기관은 유로화 조달과 유럽 투자자 기반을 장기적 관점에서 확대하는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단발성 발행이 아니라,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춘 발행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이름을 유럽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국내 기업들의 자금 조달 구조를 점검해 달러 편중이 과도한 기업에 대해 유로화와 엔화, 기타 통화를 조합한 포트폴리오형 조달 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프라, 에너지, 통신, 금융처럼 장기 자금이 필요한 분야는 유로화 활용 여지가 크다.
또한, 원화와 유로화, 달러를 잇는 통화 스와프 시장을 더 깊고 넓게 육성해야 한다. 원화가 주요 통화 간 교차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 때 한국은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를 강화할 수 있고, 위기 시 외환 방어력도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외교와 금융 전략을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보 동맹과 금융 다변화 전략은 충돌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유럽과의 금융 연계를 강화하는 이중 전략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 정당성을 국제사회와 시장에 설득해야 한다.
자금 조달의 지리적 이동 속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
자금은 언제나 위험이 낮고 비용이 싼 길을 따라간다. 지금 그 길은 워싱턴에서만 끝나지 않고 브뤼셀과 프랑크푸르트, 파리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의 유로화 이동은 미국 금융 패권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패권의 독점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 신호를 늦게 읽는 국가는 새로운 금융 지형에서 뒤처질 것이고, 이 신호를 국익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해석한 국가는 새로운 분산화 시대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될 것이다.
한국은 둘 중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달러에만 기대던 시절은 이미 저물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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