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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해임권에 무게 실은 美 대법원…독립기구 90년 판례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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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해임권에 무게 실은 美 대법원…독립기구 90년 판례 흔들

미국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청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청사.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을 해임한 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두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심리를 진행한 가운데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트럼프 측 입장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 지난 90년간 유지돼온 독립기구 보호 원칙이 뒤집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ABC뉴스와 AP통신 등이 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ABC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권한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는 이날 짆행된 구두변론을 끝으로 사실상 본안 심리를 마무리한 상태로 최종 판결은 내년 6월 회기 종료 전 나올 예정이다.

◇ 트럼프, "우선순위와 맞지 않는다"며 해임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민주당 추천 FTC 위원인 레베카 슬로터를 별다른 해임 사유 없이 해임한 조치다. 슬로터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임명됐고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3년 7년 임기의 연임을 승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슬로터에게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메일을 보내 즉시 해임했고 이에 슬로터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모두 슬로터의 손을 들어줬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현행법은 대통령이 FTC 위원을 해임할 수 있는 사유를 '비효율, 직무태만, 부정행위'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193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뉴딜 정책에 반대한 FTC 위원을 해임했다가 위법 판결을 받은 이른바 ‘험프리 판례’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 보수 대법관들 “트럼프 손” 들어…대통령 권한 강화 쏠림


AP에 따르면 8일 열린 구두변론에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독립기구 위원들은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개인의 자유와 수천억달러 규모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험프리 판례를 "껍데기만 남은 상태"라고 평가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대통령이 과학자·의사·경제학자들을 모두 해임하고 충성파로 교체하는 건 미국 시민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이 판례가 뒤집힐 경우 대통령에게 "막대한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주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노동위·소비자위 등 연쇄 소송…연준만 예외 가능성

이번 사건은 FTC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한 노동관계위원회(NLRB), 연방공무원인사심사위원회(MSPB),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등 다른 독립 연방기관의 사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관의 위원들도 같은 논리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 이사인 리사 쿡을 해임한 건은 별도로 심리될 예정이다. 대법원은 내년 1월 쿡 이사의 직위 유지 여부에 대한 변론을 들을 계획이며, 연준은 다른 독립기관과 달리 “역사적으로 별도의 독립성을 가진 기관”이라는 입장을 이미 밝혀 예외로 다룰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해임 대상에서 살아남은 고위직은 쿡 이사와 미의회 도서관 저작권국의 시라 펄머터 국장뿐이다.

◇ 위헌 판단 나와도 ‘복직’은 별도 쟁점


또 다른 쟁점은 대통령이 위법하게 인사를 해임했더라도 법원이 그 인사의 복직까지 명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닐 고서치 대법관은 “복직은 불가하지만 임금 보전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캐버노 대법관도 해임 무효 시 급여만 지급하자는 방안을 ‘편법’이라며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법조계는 이번 사건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판결로 이어질 경우 독립기구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2026년 6월 회기 종료 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