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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HBM '출혈 경쟁' 대신 '실속' 택한 삼성…DDR5로 수익성 '대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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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HBM '출혈 경쟁' 대신 '실속' 택한 삼성…DDR5로 수익성 '대반격'

64GB RDIMM 가격 450달러 돌파, 이익률 75%…HBM 30%대 마진 압도
월 8만 장 웨이퍼 범용 D램으로 긴급 전환…1c 공정 도입 가속화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의 과열된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수익성이 높은 DDR5 모듈로 생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의 과열된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수익성이 높은 DDR5 모듈로 생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의 무한 경쟁 궤도에서 과감히 이탈해 '수익성 극대화'라는 실리(實利)를 택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따라잡기 위해 HBM 점유율 확대에 올인하던 기존 전략을 전면 수정, 폭등하는 DDR5 RDIMM(Registered DIMM) 모듈로 생산 능력을 대거 재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월 8만 장 규모의 D램 웨이퍼를 범용 제품으로 돌려 수익성을 방어하겠다는 고육지책이자 승부수로 풀이된다.

8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심화된 HBM 시장 경쟁에 대응해 내부 전략을 선회했다. 핵심은 차세대 HBM3E의 점유율 확대보다는 당장 현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고용량 DDR5 서버용 모듈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 수정의 배경에는 드라마틱한 가격 변동이 자리하고 있다. 2025년 3분기 약 265달러였던 64GB DDR5 RDIMM의 공식 가격은 4분기 들어 450달러로 치솟았다. 불과 한 분기 만에 70% 가까이 폭등한 수치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모듈당 가격이 조만간 500달러 선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물 시장(Spot market) 가격은 이미 780달러를 터치했다.

HBM3E, 팔아도 남는 게 없다…DDR5 마진율 75%의 유혹


반면 삼성전자가 사활을 걸었던 HBM3E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삼성은 2025년 하반기에야 엔비디아(Nvidia)와 미국 CSP(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인증을 통과했지만, 시장 진입이 늦어진 탓에 점유율 확보를 위한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의 HBM3E 평균판매단가(ASP)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대비 약 30%나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2026년부터는 추가로 최대 30%의 가격 인하가 예상된다. 낮은 수율과 가격 공세가 겹치면서 삼성의 HBM3/HBM3E 마진율은 30%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에 반해 DDR5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2025년 4분기 가격(450달러)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64GB RDIMM의 매출총이익률(Gross Margin)은 75%를 상회한다. HBM 생산에 따른 수율 손실(Yield loss)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수율이 보장되는 DDR5를 많이 파는 것이 전사적 영업이익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정 대전환…1a에서 1c로, 월 8만 장 웨이퍼의 이동


삼성전자는 단순한 생산 품목 변경을 넘어 공정 전환(Process migration)까지 서두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기존 D램 생산 능력의 30~40%를 차지하던 1a(4세대 10나노급) 공정 라인을 차세대인 1b, 1c 노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1c 공정이 주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 과정을 통해 확보되는 약 8만 장 분량의 웨이퍼는 고스란히 DDR5, LPDDR5X, LPDDR6, GDDR7 등 범용 D램 생산에 투입된다. HBM3E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가동률 저하에 시달리느니,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범용 D램 시장을 장악해 실적을 방어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삼성이 2026년 HBM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겠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삼성은 당분간 HBM4 개발과 DDR5 RDIMM 양산에 자원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과점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며, HBM을 원하는 서버 고객사들은 이들 두 업체에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SK하이닉스도 증설 러시, 그러나 '공급 부족'은 계속된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범용 D램 생산 능력 확대를 천명했다. 다만 접근 방식은 삼성과 다르다. 삼성은 HBM3E 생산에 1c 공정을 투입하려 했으나, SK하이닉스는 1c 노드를 주로 DDR5와 LPDDR5X 등 범용 제품에 할당할 계획이다.

시장 추산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범용 D램 생산 능력은 2026년 말까지 월 2만 장 수준에서 19만 장 규모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설 러시에도 불구하고 '공급 부족(Shortage)'의 그늘은 쉽게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새롭게 추가되는 D램 물량의 대부분은 블랙홀처럼 AI 서버 섹터로 빨려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서버용 DDR5 공급난은 다소 숨통이 트이겠지만, PC와 스마트폰용 D램 공급은 2026년 내내 타이트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서버 비즈니스가 없는 일반 전자제품 제조사들은 우선순위 공급 대상에서 밀려나 원가 상승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 메모리 업계, 반사이익 톡톡


이러한 구조적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세는 대만 메모리 공급망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윈본드(Winbond)의 2025년 11월 연결 매출은 86억 2900만 대만달러(약 2억 7630만 달러)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38.7% 급증하며 4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메모리 모듈 제조업체인 팀그룹(Team Group) 역시 11월 매출이 전년 대비 78.63% 폭증한 16억 1700만 대만달러를 기록했다. 팀그룹 측은 상류 공급업체와의 장기 협력을 통해 충분한 재고를 확보했으며, 시장 가격 추세에 맞춰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ditor’s Note]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자존심'보다 '실리'를 택한 전략적 후퇴이자 동시에 영리한 우회로입니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대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DDR5 서버 시장에서 확실한 캐시카우를 확보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당장의 수익성은 개선되겠지만, 미래 AI 반도체 패권의 핵심인 HBM 시장 지배력을 경쟁사에게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HBM4 시대가 도래할 때, 삼성이 다시 기술 리더십을 탈환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