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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미중 경쟁 본격화로 핵전쟁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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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미중 경쟁 본격화로 핵전쟁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는가

샤이엔산 핵지휘소의 기억이 드러낸 핵억제의 도덕적 파산과 미중 패권 경쟁의 본격화가 불러온 새로운 생존의 위험
핵전쟁 고조 시대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파국의 회피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중국과 북한 등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전쟁 위협을 억제시키기 위한 자체 핵무장을 대전략으로 추구해야 할 때가 왔다


중국의 핵무기 수가 최근 600개에서 1000개로 급증하면서 한국도 표적 명단에 올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산주의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핵 탑재 가능 DF-41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중국 군용 차량이 굴러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의 핵무기 수가 최근 600개에서 1000개로 급증하면서 한국도 표적 명단에 올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산주의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핵 탑재 가능 DF-41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중국 군용 차량이 굴러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AP/뉴시스


핵전쟁은 언제부터 관리 대상이 되었는가


핵전쟁은 더 이상 상상 속의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관리 가능한 위험, 통제 가능한 시나리오, 그리고 정책 문서 속의 변수로 일상화되었다. 우리가 핵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체계 속에 봉인해 버린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일상화의 출발점에는 핵억제라는 이름의 사상이 있다. 그리고 그 사상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도덕적 파산이라는 단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샤이엔산 핵지휘소가 보여준 핵억제의 실체

샤이엔산 핵지휘소의 기억은 이 파산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콜로라도의 산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시설은 핵전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거대한 화강암 아래에서 인류의 종말은 수치와 좌표, 경보음과 절차로 환원되었다. 수천만 명의 생명은 지도 위의 점과 선으로 표현되었고, 파괴는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시스템의 작동으로 인식되었다. 이때부터 핵전쟁은 비극이 아니라 업무가 되었다.

합리성이라는 위험한 가정


핵억제 이론은 이런 세계관 위에서 작동한다. 상대가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은, 상대가 언제나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전제는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흔들려 왔다. 위기 상황에서의 오판, 정보의 왜곡, 체면과 정치적 압박은 합리성을 침식한다. 그럼에도 핵억제는 여전히 안정의 언어로 포장된다. 문제는 그 안정이 실제 안전이 아니라, 공포의 균형 위에 세워진 착시라는 점이다.

미는 5천발, 러는 5천5백발의 핵무기 보유

미국은 현재 5천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의 핵무기는 5천5백여발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도 올해 들어 보유한 핵무기가 6백여 발에서 1천여 발로 증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언론 매체인 더 네이션(The Nation)지는 12월15일 '우리는 이미 핵전쟁을 정상화한 것인가?'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무감각과 침묵이 핵전쟁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전직 미 공군 장교의 고백을 통해 핵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모의훈련이 만든 일상화의 감각

샤이엔산 핵지휘소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핵전쟁 모의훈련이 이 같은 착시를 제도화해 왔다는 것이 더 네이션의 분석이다. 미사일 궤적을 추적하고, 피해 규모를 계산하며, 다음 절차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핵전쟁은 ‘발생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대비해야 할 일’로 자리 잡았다. 대비가 반복될수록 금기는 약해지고, 금기가 약해질수록 상상은 현실에 가까워진다. 핵전쟁의 일상화는 이렇게 진행된다.

냉전의 유산은 끝나지 않았다


이 도덕적 파산은 냉전의 유산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새로운 구조 속에서 더 위험한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미중 경쟁은 단순한 군사력 비교를 넘어, 체제와 기술, 영향권을 둘러싼 전면적 경쟁이다. 이 경쟁의 바닥에는 핵무기가 여전히 최종 보증수표로 깔려 있다. 핵억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다시 전략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미중 경쟁이 낮추는 핵전쟁의 문턱


문제는 이 경쟁이 핵전쟁의 문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은 직접 충돌을 피하겠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상대의 의지를 시험하는 회색지대 압박을 일상화하고 있다. 위기는 점진적으로 누적되고, 오판의 가능성은 커진다. 핵무기는 여전히 사용되지 않겠지만, 사용을 상정한 계산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계산의 반복 자체가 위험이다.

타인의 죽음을 전제로 한 안정


핵억제는 본질적으로 타인의 죽음을 전제로 한 안정이다. 상대가 수천만 명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는 이 사상은, 인간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다. 샤이엔산의 시스템은 이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그곳에서 핵전쟁은 도덕적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였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윤리적 간극은 시스템이 대신 메워주었다.

위기가 배경음이 되는 세계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이 간극은 더 넓어진다. 경쟁은 상대의 약점을 시험하도록 유도하고, 시험은 위기를 일상화한다. 위기가 일상이 되면, 핵억제는 안정의 장치가 아니라 위기의 배경음이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핵전쟁을 논쟁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존재하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무감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호다.

핵무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착각


핵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핵무기를 없앨 수 있는가라는 질문 이전에, 우리는 핵무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과연 정당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샤이엔산의 기억은 관리의 언어가 어떻게 도덕적 책임을 지워왔는지를 보여준다. 관리 가능한 파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모순일지도 모른다.

다시 상상해야 할 생존의 언어


이제 필요한 것은 억제의 언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를 다시 상상하는 일이다. 생존의 언어는 파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기를 축적하는 대신 해소의 경로를 묻고, 상대의 공포를 이용하는 대신 공통의 취약성을 인정하는 방향을 모색한다. 이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핵전쟁의 일상화가 가져올 파국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 요구다.

파국을 연기하는 시대를 넘어서


미중 패권 경쟁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경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쟁의 바닥에 핵무기를 깔아두는 선택은 수정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 결단과 상상력의 문제다. 샤이엔산이 상징하는 세계가 기술과 절차의 세계였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윤리와 책임의 세계다.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파국을 피하는 것이다


핵억제의 도덕적 파산을 인정하지 않는 한, 핵전쟁은 계속해서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포장될 것이다. 그리고 그 포장은 언젠가 찢어질 수 있다. 핵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는 안정의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파국이 연기되고 있는 시대일 뿐이다. 우리가 다시 상상해야 할 것은 승리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파국을 피하는 생존의 언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역설적인 것은 미중 패권 경쟁의 본격화에 따른 핵전쟁이 일상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에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한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만이 핵무기 보유국에 의한 핵전쟁 위협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