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16배 폭증하면 뭐 하나"… 유럽 양자컴퓨터, '학문적 함정'에 갇혔다
OECD "연구는 세계 1등, 사업화는 꼴찌"… 박사 창업만 50%, '시장' 없는 '실험실 기술' 전락
韓, 특허 세계 5위지만 투자 비중 0.1% 불과… "유럽의 실패, 한국에겐 서늘한 경고장"
OECD "연구는 세계 1등, 사업화는 꼴찌"… 박사 창업만 50%, '시장' 없는 '실험실 기술' 전락
韓, 특허 세계 5위지만 투자 비중 0.1% 불과… "유럽의 실패, 한국에겐 서늘한 경고장"
이미지 확대보기"숫자의 착시"… 특허 16배 늘었지만 상용화는 '제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유럽 내 양자 기술 관련 특허 활동은 5배나 급증했다. 특히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 분야 특허는 9년 전보다 무려 16배나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기술 분야 평균 성장률인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로, 연평균 20%에 이르는 가파른 성장세다.
독일, 프랑스, 영국이 유럽 내 기술 개발을 이끌며 국제 특허 출원 수를 늘리고 있다. 수치만 보면 유럽이 양자 기술의 중심지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안토니오 캄피노스 유럽특허청장은 "숫자에 취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연구 성과가 실제 기업 매출이나 시장 점유율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사장님 절반이 박사… '실험실' 못 벗어난 유럽 스타트업
OECD는 유럽 양자 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 지나치게 높은 '학문 의존도'를 꼽았다. 보고서는 양자 기술 특허의 약 3분의 1이 과학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해당 기술이 아직 기초 과학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창업 생태계의 기형적 구조다. 양자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의 50% 이상이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일반 기술 분야 창업자의 박사 비중이 10%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으로 높다. 고학력 연구자들이 기술을 주도하는 것은 장점일 수 있으나, 비즈니스 마인드와 자본 유치 능력이 부족해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은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대학 연구소 기반의 스핀오프(분사)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초기 투자를 받은 뒤 추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성장이 멈추는 '데스 밸리(죽음의 계곡)' 구간에서 고전하고 있다.
자금 흐름도 원활하지 않다. 양자 기술은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려운 '딥테크(Deep Tech)' 분야로, 장기적인 민간 모험자본(VC) 투자가 필수다.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과감한 투자가 이어지는 반면, 유럽은 2021년 투자가 정점을 찍은 뒤 최근에는 자금 유입이 둔화하며 조정기에 들어갔다.
"한국도 남 일 아니다"… 특허 5위, 투자는 0.1%
위기감을 느낀 유럽특허청은 투자자와 유망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딥테크 파인더' 플랫폼을 가동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3만1000건이 넘는 양자 기술 특허 정글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 자본시장과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보고서는 기술 강국을 자처하지만, 원천 기술 부족과 상용화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한국에도 큰 메시지를 제공한다. 한국은 2005~2024년 사이 양자 기술 국제특허패밀리(IPFs) 출원 건수에서 세계 5위를 기록하며 기술 강국의 면모를 보였지만, 글로벌 양자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0.1% 수준에 불과해, 뛰어난 기술력에 비해 자본시장과의 연결(상용화)이 부족하다는 '기술-자본 간극' 문제가 보고서에서 지적되었다.
OECD는 "전략적인 양자 정책 없이는 기회를 영영 상실할 수 있다"며 "민간 자본이 흘러들 수 있는 금융 생태계 조성과 소재 공급망 확보가 기술 개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