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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21세기의 핵무기"… 엔비디아·삼성·SK하이닉스, '신(新) 태평양 전쟁' 최전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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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21세기의 핵무기"… 엔비디아·삼성·SK하이닉스, '신(新) 태평양 전쟁' 최전선에 서다

엔비디아 4조 달러 제국과 HBM4 대반전… 삼성전자, 2026년 '실리콘 패권' 뒤집나
"석유 시대 끝났다" 르몽드의 경고… 젠슨 황이 선택한 'AI 심장' 한국의 운명은?
엔비디아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엔비디아 로고. 사진=로이터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는 23(현지시각), 현재의 글로벌 정세를 반도체 칩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진단했다. 과거 열강들이 '검은 황금'인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중동의 사막을 누볐다면, 2025년의 세계 패권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결정된다는 냉철한 분석이다. 그 폭풍의 눈 한가운데에는 'AI 황제' 젠슨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가 있고, 그들의 핵심 병참 기지로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목됐다. 바야흐로 총성 없는 '()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다.

젠슨 황의 두 얼굴, 가죽 재킷과 꽃무늬 조끼


이 전쟁의 복잡성은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옷차림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024년 초,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가죽 재킷을 벗고 중국 동북부의 전통 의상인 붉은 꽃무늬 조끼를 입은 채 민속춤을 췄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속에서도 거대 시장인 중국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비공식 외교였다.

그러나 1년 뒤인 20255, 대만 컴퓨텍스 현장에서 그는 다시 가죽 재킷을 입고 "대만이 AI 시대의 심장"이라며 '젠새니티(Jensanity·젠슨 황 신드롬)'를 일으켰다. 대만 태생의 미국인 CEO가 보여주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미·중 갈등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미국 백악관은 엔비디아의 칩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AI 무기 고도화에 쓰이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중국은 이에 맞서 '반도체 굴기'를 위한 최후의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말 현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44000억 달러(6428조 원)를 넘어섰다. 젠슨 황 개인의 자산만 1500억 달러(219조 원)에 육박한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성장이 아니다. 금융, 제조, 서비스, 국방 등 모든 산업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실리콘 경제(Silicon Economy)'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재가 아니다. 현대전에서 드론 편대를 지휘하고, 사이버 안보를 책임지며, 국가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가동하는 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르몽드가 "반도체가 글로벌 권력 지도를 바꿨다"고 평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칩을 가진 자가 안보를 보장받는 시대, 즉 대만의 TSMC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가 '실리콘 방패'로 불리는 배경이다.

한국 반도체, '샌드위치' 위기 넘어 '슈퍼 사이클'의 주역으로


이 거대한 지정학적 소용돌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중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AI 반도체 동맹의 필수 불가결한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특히 'AI 메모리'라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의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20253분기 기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약 57%를 기록하며 엔비디아의 최우선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초기 시장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거인' 삼성전자의 반격도 매섭다. 업계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512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제출한 차세대 'HBM4(6세대)' 샘플이 내부 품질 테스트에서 경쟁사를 제치고 '최고 점수(Highest Score)'를 획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2026년부터 본격화될 HBM4 시장의 판도가 뒤집힐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압도적인 초격차 기술로 '() 추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26,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중국 내 생산 기지(시안, 우시)의 첨단 공정 전환이 막힌 것은 한국 기업들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한국 본토의 생산 능력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2026년을 목전에 둔 지금, 태평양의 파고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엔비디아라는 항해사가 키를 잡은 배 위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진 역할을 수행하며 거친 파도를 넘고 있다. 르몽드의 분석처럼 반도체 쟁탈전은 이제 무자비한 강대국 간의 투쟁이 되었다. 그리고 그 투쟁의 승패는 워싱턴이나 베이징이 아닌, 평택과 이천의 반도체 라인에서 결정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실리콘 전쟁'의 최전선을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