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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노벨상 욕심'과 EU의 '자충수'... 우크라이나, 총성 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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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노벨상 욕심'과 EU의 '자충수'... 우크라이나, 총성 없이 무너진다

‘동결자산 310조’ 활용 무산... EU, 겁먹은 벨기에 탓 ‘반쪽 지원’ 그쳐
안보 없는 ‘마이애미 회동’... 트럼프 측 성급한 협상론에 크렘린 ‘냉소’
서방 분열 틈타 승기 잡은 푸틴... 키이우 향해 "혹독하고 긴 겨울" 경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로이터
서방 세계의 외교적 엇박자와 섣부른 협상론이 우크라이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유럽연합(EU)의 소극적인 재정 지원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안보 없는평화 구상이 맞물리면서, 전선(前線)의 승패와 무관하게 전쟁의 무게추가 러시아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3(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전투에서 지지 않고도 우크라이나를 잃고 있는 서방(How the West is losing Ukraine without losing a battle)’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이같이 지적하며 서방의 각성을 촉구했다.

EU'결정적 실기'... 동결자산 활용 무산


볼턴 전 보좌관은 먼저 EU의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지난주 열린 EU 정상회의는 러시아 동결자산 약 2100억 유로(360조 원)를 담보로 우크라이나 재건 자금을 대출하려던 계획을 확정 짓지 못했다.

가장 많은 동결자산을 보유한 벨기에가 향후 러시아의 반환 소송 가능성을 우려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EU는 자체 예산으로 900억 유로(154조 원)를 지원하기로 선회했으나, 이마저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가 참여를 거부하며 빛이 바랬다.

볼턴은 이를 두고 "부분의 합보다 못한 EU의 실체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힐난했다. 이번에 승인된 900억 유로는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전쟁 수행이나 재건 비용이 아닌 단순 재정 지원에 불과해 향후 우크라이나의 방어 능력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의 '위험한 동상이몽'... 안보 외면한 '보여주기식' 협상


미국 쪽 상황도 녹록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EU의 자산 활용 계획을 무산시키려 물밑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산을 트럼프 당선인의 독자적인 '평화 구상'에 활용하겠다는 셈법 때문이다.

특히 지난 주말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 등 트럼프 측 인사들이 마이애미에서 러시아 협상 대표인 키릴 드미트리예프를 만난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위트코프는 회동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자평했지만, 크렘린궁의 유리 우샤코프 보좌관은 "오히려 비건설적이었다"고 일축하며 온도 차를 보였다.

볼턴은 이에 대해 "트럼프의 외교팀은 협상의 내용이나 안보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트럼프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줄 '거래' 성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정보당국은 푸틴이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음에도, 트럼프 측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감 얻은 푸틴... 리더십 실종된 유럽


서방의 엇박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연말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새 국가안보전략이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규정하지 않은 점을 흡족해하며, 마크 뤼테 나토(NATO) 사무총장을 향해 "전쟁 준비를 하는가? 글도 못 읽나"라고 조롱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국내 정치 문제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나마 트럼프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마크 뤼테 사무총장이 역할을 할 수 있겠으나, 나토 사무총장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볼턴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즐거운 성탄절을 기원해야겠지만, 그들 앞에는 길고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는 문장으로 글을 맺으며, 서방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금융센터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 실패는 단순히 자금 문제를 떠나 서방의 단일대오가 무너졌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 것"이라며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