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는 ‘교정’하고 中은 ‘강요’하는 힘의 정치… 시민의 자기결정권 위협
- 대만 현상 변경 반대 ‘입 닫은’ 韓 외교… 중립 아닌 ‘강자의 서사’ 묵인
- 대만 현상 변경 반대 ‘입 닫은’ 韓 외교… 중립 아닌 ‘강자의 서사’ 묵인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대전략(grand strategy)의 본질은 고립주의나 단순한 힘의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을 세계 질서의 하나의 행위자가 아니라, 최종 판단자이자 교정자로 설정하려는 시도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의 체포와 압송, 그린란드 강제 합병 의지 표명, 동맹과 비동맹을 가르는 일방적 기준은 모두 이 같은 인식 위에서 등장했다. 트럼프는 미국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집행할 권리를 가진 국가로 재정의하고 있다.
트럼프의 ‘신(新) 먼로 독트린’, 민주주의를 ‘교정’하다
이 같은 사고 구조는 플라톤의 철인왕 개념이 현대 정치에서 왜곡된 형태로 되살아난 결과다. 철인왕은 진리를 인식한 소수가 통치해야 한다는 이상이었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 이 개념은 스스로를 도덕적 우위에 둔 강대국이 타국의 체제와 주권을 교정할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으로 전환되었다. 신 먼로 독트린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전략의 위험성은 힘의 사용 자체보다, 그 힘이 절대적 도덕 판단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저작으로 유명한 유대계 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철인왕 사상을 비판한 이유는 그것이 정치의 본질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옳은 결과를 보장하는 체제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체제다. 그러나 철인왕 논리에서는 시민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보호되고 인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국민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주권을 침해하는 방식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관리 대상으로 격하시킨다.
아렌트의 경고… “시민은 관리 대상이 아니다”
트럼프 대전략의 첫 번째 문제는 민주주의를 절차가 아니라 결과로 환원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국가는 교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주입될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절차와 실패의 가능성, 자기결정의 위험까지 포함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를 강제로 이식하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의 자기부정인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주권 개념의 조건화다. 트럼프의 세계관에서 주권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도덕적 판단에 따라 인정되거나 박탈될 수 있는 조건부 권리인 것이다. 이는 국제 질서를 규범의 체계가 아니라 위계의 체계로 바꾼다. 강대국은 판단자이고, 약소국은 판단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질서는 안정될 수 없다. 판단자의 위치는 언제나 힘에 의해 재정의되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대만 포위, 또 다른 ‘철인왕’의 등장
트럼프 대전략이 철인왕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교정하려 한다면, 시진핑 체제는 역사와 민족이라는 언어로 동일한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향한 대규모 군사 포위 훈련을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현실의 힘으로 구현하려 하고 있다. 이 훈련은 군사적 억지력 과시가 아니라 정치적 선언이다. 대만의 미래는 대만 주민의 선택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결정할 문제라는 선언인 것이다.
중국의 대만 포위는 민주주의와 전제주의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철인왕을 자처하는 또 하나의 권력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진핑 체제는 질서와 통일을 이유로 정치적 다원성과 자기결정권을 제거한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정치적 주체를 시민이 아니라 권력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 질서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단순화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철인왕을 자처하는 권력들 간의 경쟁이다. 한쪽은 자유를 말하고, 다른 한쪽은 통일을 말하지만, 둘 다 시민의 정치적 행위를 장애물로 취급한다. 민주주의는 보호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관리하거나 흡수해야 할 상태로 전락한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전체주의의 위험은 특정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방식의 문제다.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권력이 타인의 선택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때, 그 정치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도 전체주의적 성격을 띨 수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대전략은 이 같은 위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중립 아냐… 韓, ‘가치의 언어’ 회복해야
이 지점에서 한국의 문제가 드러난다. 한국 정부는 시진핑의 새해 첫 정상회담 파트너라는 상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공식 문서 교환에서 하나의 중국 입장을 언급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이 힘의 사용을 통해 대만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는 최소한의 원칙적 입장을 명시하지 못했다. 이는 외교적 유연성이 아니라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침묵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는 모든 사안에서 행동할 수 없더라도, 말해야 할 때 침묵해서는 안 된다. 힘의 사용을 통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강자의 서사(narrative)를 묵인하는 선택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중국의 비민주성과 전제주의적 행태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이를 공식 문서에서 외면함으로써 스스로를 방관자의 위치로 밀어내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이 같은 외교가 굴욕적인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 때문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대만 문제를 지정학적 분쟁이 아니라 자기결정과 절차의 문제로 인식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번 선택은 이 책임을 회피했다. 트럼프의 철인왕적 대전략과 시진핑의 전제적 통일 전략 사이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 질서의 위기는 힘의 충돌이 아니라 정치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치의 종말을 가속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줄타기가 아니라 명확한 자기 규정이다. 민주주의를 말하지 못하는 외교는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
철인왕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민주주의 국가의 진짜 과제는 힘을 더 갖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잃지 않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관리되는 민주주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리되는 민주주의는 언젠가 교정의 대상이 되고 만다. 지금 한국이 마주한 가장 큰 위험은 중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스스로 민주주의적 판단을 유보하는 습관이 굳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던져야 하는 최종 질문은 분명하다. 세계가 다시 철인왕을 원할 때, 민주주의 국가는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의 언어로 응답할 것인가. 그 선택은 외교의 기술이 아니라, 체제의 자기 인식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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