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병합 의지 표명에서 시작된 신 먼로 독트린, 자동 억지의 붕괴와 캐나다의 공포 속에서 시험대에 오른 동맹 질서
이미지 확대보기동맹의 공포는 전쟁이 아니라 질서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최근 국제정치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장면은 캐나다가 느끼는 불안이다. 이 불안은 군사적 위협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동맹이라는 제도가 더 이상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공포다. 캐나다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미국이 캐나다를 공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캐나다의 주권과 정책 선택을 우회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동 질문이 성립하는 순간, 동맹은 이미 이전의 동맹이 아니다. 캐나다는 군사적 억지로 미국을 상대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캐나다 안보의 핵심은 국제법과 규범, 그리고 동맹이 자동으로 작동한다는 확신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스스로 규범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동맹을 조건부 관계로 재정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캐나다는 구조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의 불안이 중요한 이유는 캐나다가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캐나다는 전후 동맹 질서에서 가장 안정적인 위치에 있던 국가다. 그런 국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동맹 질서 전체가 더 이상 예외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캐나다의 공포는 유럽과 동아시아 동맹국들이 곧 공유하게 될 감정의 전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린란드는 발언이 아니라 전략 실험장이었다
이 같은 공포를 촉발한 결정적 계기는 그린란드 병합 의지 표명이었다. 이 발언은 협상용 수사도, 개인적 과시도 아니다. 그것은 동맹국의 영토와 주권이 더 이상 절대적 불가침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첫 공개 선언이었다. 이 순간 미국은 동맹 세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규범은 선택 사항이며, 전략적 필요 앞에서는 동맹의 관습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린란드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신 먼로 독트린이 처음으로 현실 공간에서 시험된 전략 실험장이었다. 북극이라는 전략 공간을 영향권으로 봉인하겠다는 의지 표명은, 지리적 범위를 넘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방식의 전환을 뜻한다. 미국은 더 이상 규범의 관리자 역할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고, 힘과 영향권을 통해 질서를 재배치하겠다는 선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왜 하필 그린란드인가. 그린란드는 북극과 대서양을 잇는 관문이며, 조기경보 체계와 해상 통제, 항공 접근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전략 요충지로 꼽힌다. 이곳은 단순한 영토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개입의 속도를 관리하는 지점이다. 동시에 희토류를 포함한 전략 자원의 잠재적 보고이기도 하다. 그린란드는 군사·산업·공급망이 하나로 결합되는 지점이며, 미국이 북극을 단순한 협력 공간이 아니라 영향권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트럼프의 이번 병합 발언은 동맹국들이 어디까지 침묵하는지를 시험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미국은 그린란드를 통해 묻고 있었다. 전략적 필요가 제기될 경우, 동맹은 어디까지 주권 침해 가능성을 감내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신 먼로 독트린은 방어 선언이 아니라 통치 방식의 전환이다
신 먼로 독트린은 과거의 먼로 독트린과 닮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과거의 먼로 독트린이 외부 개입을 차단하는 방어적 선언이었다면, 지금의 신 먼로 독트린은 핵심 공간을 선별해 지배력으로 관리하겠다는 통치 방식의 전환인 것이다. 이 통치 방식에서는 규범과 약속이 우선이 아니라, 영향권과 결과가 우선한다.
이 같은 선택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변화는 동맹의 성격 변화다. 동맹은 가치 공동체에서 계약 관계로 이동한다. 공동체는 신뢰와 약속으로 유지되지만, 계약은 조건과 대가로 유지된다. 계약의 세계에서 개입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그리고 선택이 되는 순간 억지의 자동성은 붕괴하기 마련이다.
억지는 상대가 개입을 확신할 때만 작동한다. 그러나 동맹국들 스스로가 그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면, 억지는 계산의 대상이 되고 만다. 계산이 시작되는 억지는 더 이상 억지가 아니다. 신 먼로 독트린은 바로 이 자동 억지를 구조적으로 무너뜨리는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그린란드는 이 전환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정책 언어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였다. 동맹의 영토와 주권조차 전략적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자동 억지의 토대를 직접 흔들었다.
북극에서 시작된 균열은 미중 경쟁의 판을 바꾼다
신 먼로 독트린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행동 자유도를 넓혀준다. 동맹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고, 규범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으며, 영향권 내에서 더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같은 전략은 미국 패권의 핵심 자산을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자산은 다름 아닌 군사력이 아니라 동맹의 결속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은 단독 행동이 아니라 연합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서 나왔다. 동맹국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자동 결집하는 구조가 있었기에, 미국은 항상 상대보다 큰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맹이 계약으로 전환되면 결속은 느슨해지고, 각국은 비용과 대가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중국은 구조적 기회를 얻는다. 중국은 미국의 힘을 정면으로 넘어서는 전략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동맹의 응집력을 분해한다. 동맹이 하나의 덩어리일 때는 상대하기 어렵지만, 각자도생의 계약 단위로 쪼개지면 각국을 개별적으로 흔들 수 있다. 신 먼로 독트린은 중국에게 이 분해 비용을 크게 낮춰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장의 선택이다. 규범과 신뢰의 전장에서 미국은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영향권과 통제의 전장에서는 중국도 이미 익숙한 상태다. 북극, 자원, 해협, 시간 통제는 중국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경쟁 영역이다. 요컨대 미국은 자신이 가장 잘 싸울 수 있었던 전장을 스스로 접고, 중국과 대등한 게임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 같은 변화의 관찰자가 아니라 결과 당사자다
한국에게 이 같은 변화는 분석 대상이 아니다. 이미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억지의 핵심은 빠른 개입의 확신이었다. 그러나 개입이 선택이 되는 순간, 억지는 약해진다. 이 같은 환경에서 한국은 동맹의 자동성에 기대어 시간을 벌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이 직면한 질문은 명확하다. 동맹이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순간에도 억지가 유지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한국은 전략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다.
한국의 국익은 동맹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동맹을 신앙처럼 소비하는 데에도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규범 기반 질서의 복원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 질서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자율적 억지와 선택지를 준비하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현실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지가 도달하는 결론은 간단하다. 신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세계를 관리하는 언어를 규범에서 지배력으로 바꾸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선택은 동맹을 보호하기보다 시험에 들게 만들고, 자동 억지를 붕괴시키며,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장기적 승리 조건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캐나다의 공포와 그린란드에서 시작된 균열은 그 같은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패권 경쟁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국가는 약한 국가가 아니다.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를 보고도 그것을 일시적 소음으로 해석하는 국가가 가장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심이 아니라 전략적 각성인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