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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돈로주의와 그린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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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돈로주의와 그린란드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전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전 고려대 교수
미국은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토도 그리 크지 않았다. 미국 대륙의 동부 연안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이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큰 덩치의 대국으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는 루이지애나 편입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03년. 당시 루이지애나는 프랑스 땅이었다. 루이지애나의 중심 도시 뉴올리언스의 통상권을 요구하러 프랑스로 간 미국 측 대표에게 나폴레옹이 면적 214만㎢의 거대한 땅 루이지애나 전체를 단돈 1500만 달러에 매각한다. 이때 미국이 사들인 루이지애나는 현재 미국 남부의 한 주로 있는 그 루이지애나가 아니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14개 주가 통째로 미국으로 넘어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역사상 가장 현명한 영토 거래였다. 1㎢당 겨우 단돈 7달러의 가격이었다. 이 구매로 인해 미국의 영토는 2배로 불어났다. 그때 사들인 땅은 오늘날 미국 전체 영토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루이지애나 매입은 또 서부 개척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서부 개척으로 미국의 영토는 크게 넓어졌다. 오늘날 미국의 골격은 루이지애나 매입으로부터 이루어진 셈이다.

이 루이지애나 영토 매입 협상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제임스 먼로다. 영토 매입 후 미국의 5대 대통령에까지 오른 먼로는 1823년 이른바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다. 먼로 독트린이란 일종의 외교방침으로 유럽과 미주 대륙 간에 상호 불간섭과 유럽 국가에 의한 미주 대륙 식민지 건설 배격이 주요 내용이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대부분 유럽의 식민지였다.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 침공 후 왕위를 찬탈한 것이 계기가 되어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투쟁을 벌였다. 나폴레옹 전쟁 와중에 거의 대부분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식민지 회복을 위해 유럽 국가들로부터 도움받기를 원했다. 빈 체제의 시작으로 결성된 신성동맹국들이 중남미의 식민지를 회복시킬 의도를 표방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식민지 회복은 미국의 안보에 위협 요소가 될 수 있었고, 영토 확장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먼로주의다. 유럽 열강으로 하여금 더 이상 미주 대륙을 식민지화하거나 미국이나 멕시코 등 미 대륙에 있는 주권 국가에 대한 간섭을 거부하는 내용이다. 그 대신 미국은 유럽 열강 간의 전쟁에 대해 중립을 준수하기로 했다. 이 선언으로 많은 중남미 신생 국가들이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다.

먼로주의의 핵심은 ‘상호 불간섭’이었다. 유럽은 아메리카에 관여하지 말고, 미국도 유럽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먼로주의를 한층 더 강화한 것이 트럼프의 '돈로주의(Don-Roe Doctrine)'다. 트럼프의 돈로주의는 이 ‘불간섭’ 원칙을 철저히 비대칭적으로 해석한다. 트럼프는 중국과 러시아가 중남미에서 벌이는 모든 경제적·군사적 활동을 미국의 생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했다. 과거 먼로주의가 유럽 제국주의로부터 신생 독립국들을 보호하려 했다면 오늘날 트럼프의 돈로주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위해 서반구 전체를 미국의 전용 경제권이자 안보 방벽으로 재편하려 한다. 방어적 고립주의에서 훨씬 더 확장된 ‘공격적 패권주의’인 셈이다.
돈로주의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은 올해 초 발생한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축출 작전이다. 트럼프는 겉으로 ‘마약 밀매 차단’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그 본질은 서반구 내 중국과 러시아의 교두보를 제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트럼프의 돈로주의에는 먼로주의에다 '루스벨트 계론(Roosevelt Corollary)'을 합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주장했던 루스벨트 계론은 미국이 서반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 경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트럼프는 이를 더욱 노골화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서반구 국가에 대해서는 주권 침해를 불사하는 군사적 행동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남미 국가들에 미국은 더 이상 ‘친절한 이웃’이 아니라 규칙을 어기면 언제든 ‘몽둥이를 휘두르는 무서운 집주인’이 됐다.

돈로주의의 가장 무서운 지점은 자원의 무기화다. 베네수엘라의 정권교체 이후 미국은 남미의 석유와 핵심 광물(리튬·구리 등)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하얀 석유'라 불리는 리튬 삼각지대, 즉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전기차와 반도체 공급망의 숨통을 미국이 쥐게 된 것이다. 이제 달러는 단순한 기축통화를 넘어 서반구 경제권 내에서 ‘출입증’ 역할을 한다.

돈로주의는 기존 글로벌 동맹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이 서반구에 집중할수록 나토(NATO)와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트럼프는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가 책임져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철저히 서반구 요새화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미국의 보호막이 얇아지는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돈로주의는 전 세계를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정글로 몰아넣고 있다. 1823년의 먼로주의가 유럽 열강의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려는 ‘방어적 선언’이었다면, 2026년의 ‘돈로주의’는 전 세계의 자본과 자원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흡수하려는 ‘공격적 재편’이다.

트럼프의 돈로주의는 북미와 남미를 아우르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하나의 폐쇄적 경제 블록으로 묶고, 중국과 러시아 등 '비서반구 경쟁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이 구역에서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자유무역 질서를 파괴하고, 지리적 근접성에 기반한 ‘지정학적 중상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아시아에 집중돼 있던 제조 거점들이 멕시코와 미국 남부(Sun Belt)로 대거 이동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을 넘어 이제는 남미의 천연자원과 북미의 기술력을 결합한 ‘범아메리카 수직계열화’가 추진되고 있다. 세계 경제는 더 이상 협력과 공생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영역(Sphere)과 지배(Dominance)만이 남았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 세계는 이를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의 기행'으로 치부했다. 북극해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새로운 항로가 열리는 시점에서 이 제안은 철저히 계산된 국가안보 전략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돈로주의는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에 사활이 걸린 위기다. 돈로주의는 먼 산의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의 생존과 사활이 걸린 거대한 돌풍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한국 경제는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타기를 넘어 아메리카 요새라는 거대한 벽 안으로 어떻게 '기술적 대체불가성'을 가지고 진입할 것인지, 동시에 비서반구 시장에서 독자적인 생존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