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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미국이 비운 중동과 아프리카 식량 공급 공백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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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미국이 비운 중동과 아프리카 식량 공급 공백 장악

미국의 식량 원조와 수출 축소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중국과 러시아산 곡물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
인도 북동부 아삼 주에서 한 노동자가 차잎을 따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도 북동부 아삼 주에서 한 노동자가 차잎을 따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이 국제 식량 원조와 공급 프로그램을 축소하면서 공급 공백이 발생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밀과 옥수수 공급을 확대하며 미국이 맡아 왔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과거 미국산 곡물 의존도가 높았던 곳으로, 공급 주체의 변화는 단순한 무역 이동을 넘어 외교적 영향력의 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식량 원조는 재난과 분쟁 지역에서 긴급 대응 수단으로 활용돼 왔을 뿐 아니라 수혜국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대외 지원 예산이 축소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식량 공급이 줄어든 지역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일부 국가와 국제기구는 안정적인 대체 공급원을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후퇴로 생긴 공급 공백


미국은 장기간 세계 최대의 식량 지원국으로서 곡물 공급과 유통, 국제기구 협력을 통해 글로벌 식량 안정을 뒷받침해 왔다. 이러한 지원은 단기적 식량 부족을 해소하는 기능과 함께 정치적 신뢰를 형성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러나 지원 규모가 줄어들자 기존에 미국 원조에 의존하던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공급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식량 지원 축소는 단순히 물량 감소에 그치지 않았다. 현지 유통망과 저장 시설, 지원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운영 구조 자체가 약화되면서 장기적 식량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상황은 다른 국가들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중국은 국영 무역망을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 밀과 옥수수 공급을 확대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존 미국산 곡물 계약이 종료되거나 축소된 이후 중국산 곡물이 공급되고 있다. 러시아도 흑해 연안 생산 물량을 중심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밀을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산 곡물은 해당 지역 항만을 통해 선적돼 수입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의 장기 농업 협력 확대


중국은 미국의 식량 지원 축소로 발생한 공백을 식량 공급을 넘어서 농업 협력과 인프라 투자 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단순히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저장과 운송 체계를 함께 만드는 접근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지원은 농업 기술 이전과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며 장기적인 공급 관계를 형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방식은 수혜국 입장에서 단기적 식량 확보와 동시에 자국 생산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중국과의 협력 구조가 깊어질수록 외교적 의존도 역시 높아질 수 있다. 식량 생산과 유통이 특정 국가의 지원 체계에 연결될 경우 정책 선택의 폭이 제한될 가능성도 함께 존재한다.

러시아의 곡물 공급 영향력

러시아는 세계적인 곡물 수출국으로서 기존의 생산 기반을 활용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산 밀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중요한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수출 경로와 계약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공급이 줄어든 지역에서는 러시아의 곡물 수출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는 단순한 상업 거래를 넘어 식량 안보와 외교 관계가 맞물리는 구조를 형성한다. 공급국이 바뀌면서 수혜국의 외교적 선택지와 협상 환경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식량과 외교가 결합되는 구조


식량 공급은 더 이상 인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는 국내 정치 안정과 경제 운영에 직결되며 외부 공급망은 외교 전략의 일부로 작동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식량 지원 확대는 이런 구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들 국가는 단기적 지원보다는 장기적 관계 형성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식량 생산과 유통, 저장 체계에 대한 참여는 단순한 원조보다 깊은 관계를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수혜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혜국의 선택과 제약


식량 공급원이 다변화되면서 수혜국의 선택지는 넓어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의존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커진다. 장기적 식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국가의 지원에 크게 의존할 경우 외교적 자율성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는 여러 공급원을 병행하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과 유통 체계가 특정 국가의 투자와 기술에 깊이 연결될 경우 완전한 분산은 쉽지 않다. 식량 주권과 외교 전략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 식량 질서의 변화


미국의 후퇴와 중국과 러시아의 진입은 국제 식량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기존에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중심이 된 지원 구조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다양한 국가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극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식량 생산과 공급망은 장기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한 번 형성된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현재의 움직임은 향후 국제 정치와 안보 환경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량 공급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


식량은 이제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공급 능력은 인도적 지원을 넘어 외교적 신뢰와 영향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식량 공급 영역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이런 변화의 결과다.

미국의 향후 선택은 이 흐름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다시 적극적으로 개입할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국제 협력을 모색할지에 따라 글로벌 식량 질서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변화는 단순한 원조 정책의 조정이 아니라 국제 영향력 구조의 재편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