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장관 "디지털 주권은 국가 생존 문제"…EU 27개국 공동 선언
미·유럽 갈등 격화 속 오픈소스 전환 가속…현실 장벽은 여전히 높아
미·유럽 갈등 격화 속 오픈소스 전환 가속…현실 장벽은 여전히 높아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유럽 클라우드 시장의 85%를 쥐고 있는 가운데, 유럽 각국 정부가 디지털 주권 확보를 국가 안보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고 자국산·오픈소스 기반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CNBC는 18일(현지시각) 에스토니아, 독일, 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등 주요 유럽 정부의 공식 입장을 종합해 이같이 보도했다.
"동쪽 안보 위협이 디지털 주권 논의 바꿔놨다“
에스토니아의 리사 파코스타 법무·디지털부 장관은 CNBC에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소중히 여기지만, 폐쇄적인 독점 솔루션에만 의존하면 전략적 취약점이 생긴다"며 "외부 연결이 끊기거나 공급업체 정책이 바뀌어도 에스토니아 디지털 국가를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 디지털·정부현대화부 대변인은 "최근 수년간 지정학 변화 속에서 디지털 주권 강화는 현 정부의 핵심 목표 중 하나"라며 "미국과 유럽 간 긴장된 관계로 다자 협력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관세 부과,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군사 점령 발언 등으로 악화된 미·유럽 관계가 자리한다.
여기에 미국 2018년 클라우드법(Cloud Act)이 미국 기업이 보관하는 데이터에 저장 위치와 상관없이 미국 법 집행기관의 접근 요청을 허용하고 있어 유럽 각국의 데이터 주권 우려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덴마크·벨기에…구체적 전환 행보 시작
프랑스는 지난달 정부 전용 화상회의 도구 '비지오(Visio)'를 오는 2027년까지 모든 국가 서비스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나 줌 같은 미국산 도구를 대체하는 것이 목표다.
덴마크는 지난해 6월 일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오픈소스 대안 소프트웨어를 시범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스테이지 올센 덴마크 디지털부 장관은 당시 "지금 너무 많은 공공 디지털 인프라가 극소수 해외 공급업체에 묶여 취약하다"고 썼다.
다만 덴마크 정부 대변인은 CNBC에 이번 시범 사업을 "소규모"로 규정하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윈도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벨기에 연방 정부 대변인은 "디지털 분야 의존도를 가장 중요한 영역부터 다시 살피고 있다"며 "연방 행정부를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전략과 데이터센터 현황 분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EU 27개 회원국 전체가 "유럽의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고 전략적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EU는 지난달 별도 성명에서 "디지털 분야의 비(非) EU 국가 의존도 문제가 심각하며, 핵심 분야를 포함해 취약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유럽 내 자국 클라우드 인프라 서비스 지출이 2025년 대비 2027년 3배 이상 늘어 230억 달러(약 33조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가트너 수석 분석가 르네 부에스트는 "지정학 긴장이 커지면서 미국·중국 외 지역 기업들이 디지털 독립을 위해 자국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정부가 주요 수요처가 되고, 에너지·통신 등 기반시설 운영 기업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점유율 역전은 매우 어렵다"…현실 장벽
유럽의 탈미국 디지털 의지에도 현실 장벽은 높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3사는 유럽 클라우드 시장의 70% 이상을 쥐고 있으며, 미국 기업들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 점유율도 59% 이상에 이른다.
시너지리서치그룹 수석 분석가 존 딘스데일은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려면 연구개발, 서비스 개발, 기술 인프라, 고객 지원, 유통 파트너십에 지속적으로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어야 한다"며 "유럽 클라우드 업체들이 이 시장 점유율 추세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뒤집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파코스타 에스토니아 장관도 "미국 초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은 유럽 클라우드 생태계에서 중요하고 신뢰할 만한 파트너"라며 미국 기술과의 완전한 결별을 추구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유럽 각국이 디지털 주권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선언했지만,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미국 빅테크 의존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