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옆에 붙이는 건 구식이다”... 삼성, 엔비디아 설계도 통째로 바꿀 ‘옥상 메모리’ 투입

글로벌이코노믹

“옆에 붙이는 건 구식이다”... 삼성, 엔비디아 설계도 통째로 바꿀 ‘옥상 메모리’ 투입

HBM으로 번 돈 다 뱉어낼 판? 반도체 옥상 위에 트랜지스터 심는 수직 합체 혁명
하이닉스 추격 따돌릴 유령 트랜지스터의 등장... 누설 전류 96% 잡아낸 삼성의 반격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JP모건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2나노미터(nm) 파운드리 공정 수율의 조기 안정화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3배 확대, 낸드플래시 분기 연속 100% 가격 인상이라는 세 축의 반격 전략을 공개했다.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JP모건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2나노미터(nm) 파운드리 공정 수율의 조기 안정화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3배 확대, 낸드플래시 분기 연속 100% 가격 인상이라는 세 축의 반격 전략을 공개했다. 사진=삼성전자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물들이 반도체 회로를 더 가늘게 그리는 미세화 공정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한계 돌파를 시도하는 사이, 반도체 판도를 뿌리째 뒤흔들 조용한 역전극이 시작되었다. 2026년 3월 현재, 엔비디아와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 효율의 한계에 부딪힌 지금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구조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프로세서 옆에 나란히 배치하는 기존 방식과의 작별이다. 대신 반도체 회로 옥상에 해당하는 후공정 배선 상단에 메모리 기능을 하는 트랜지스터를 직접 심어버리는 이른바 수직 합체 혁명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숫자 싸움에 매몰된 HBM 시장에 던져진 폭탄


국내 반도체와 인공지능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시장은 고대역폭 메모리를 몇 단이나 쌓는지, 혹은 어떤 결합 기술이 우월한지에만 지나치게 몰두해 왔다. 하지만 이는 메인 건물 옆에 별개의 창고를 짓고 얼마나 넓은 복도로 연결하느냐를 다투는 수준에 불과하다. 엔비디아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은 데이터가 이동하는 물리적 거리 자체를 제로(Zero)로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엔비디아에 제안한 산화물 반도체 기반 적층 기술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한다. 프로세서 옆에 메모리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연산 칩의 회로 옥상 위에 메모리 층을 직접 덧입혀 하나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기존 재료의 열적 한계를 넘어선 산화물 반도체의 기적


반도체 회로 옥상에 트랜지스터를 쌓는 아이디어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늘 뜨거운 열이 문제였다. 기존 실리콘 소재는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거나 아래에 있는 연산 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여기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저온에서도 공정이 가능한 산화물 반도체다. 이 소재는 연산 칩의 배선층 사이에 마치 유령처럼 트랜지스터를 심어 넣을 수 있게 해준다. 칩의 전체 면적을 늘리지 않고도 연산과 저장 기능을 수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누설 전류 96% 차단하며 입증된 삼성의 반격


삼성전자가 이번에 엔비디아에 제안한 기술은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산화물 반도체의 고질적 문제였던 누설 전류를 기존 대비 96%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력 대비 성능 비중인 전성비를 극단적으로 높여야 하는 인공지능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경쟁사들과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벌릴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된다. 삼성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쥔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아예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 하이닉스의 존재 이유를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쥔 격이다.

엔비디아와 애플이 수직 적층에 열광하는 이유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애플 역시 이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아이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기기 자체 실행 인공지능을 구현하려면 전력 효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회로 옥상에 직접 트랜지스터를 쌓는 방식은 데이터 전송 효율을 극대화하면서도 기기 내부의 공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칩 설계의 물리 법칙을 새로 쓰는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성능은 수배로 뛰면서 배터리 소모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꿈의 인공지능 기기가 현실화된다. 실리콘밸리가 삼성의 이 새로운 제안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극비리에 테스트를 진행 중인 배경이다.

판 뒤집기의 서막, 적층 전쟁에서 통합 전쟁으로


이제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누가 더 높이 쌓느냐는 1차원적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미래의 반도체 공장은 서로 다른 성질의 칩들을 어떻게 하나의 유기체처럼 수직으로 통합하느냐를 다투는 전장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가 꺼내 든 산화물 반도체 카드는 단순히 신제품 출시를 넘어, 지난 수년간 이어져 온 고대역폭 메모리 중심의 공급망 질서를 단번에 재편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프로세서 옆에 메모리를 두는 시대가 저물고 한 지붕 아래 수직 통합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공지능 패권 전쟁의 향방은 이제 누가 이 유령 트랜지스터를 완벽하게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