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잡으려 러시아산 원유 1억 2800만 배럴 30일 개방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100억 달러 수혈" 경고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100억 달러 수혈"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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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사건의 핵심, 유가 안정이냐 VS 동맹 배신이냐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 재무부가 이미 유조선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 약 1억 2800만 배럴을 30일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한시적 조치를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공식 근거는 '유가 안정'이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국제 에너지 시장에는 공급 충격이 가해졌다. 러시아산 우랄(Ural)유 가격은 이달 들어 배럴당 80달러(약 11만 9000원)를 넘어서며 전달 대비 약 두 배로 뛰었다. 미국 소비자들의 기름값 부담이 커지자 트럼프 행정부가 꺼낸 카드가 바로 이 '제재 유예'였다.
키이우 경제대학 에너지·기후 연구센터의 보리스 도도노프 센터장은 "러시아는 올 1~2월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겪었지만, 이번 조치로 예산 균형을 되찾고 국부펀드에 여유 자금을 다시 쌓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가 급등과 제재 유예 효과가 맞물려 러시아가 하루 최대 1억 5000만 달러(약 2248억 원)의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맹의 경고, "100억 달러짜리 양보"
동맹국들의 반응은 날카롭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미국의 이번 양보 한 번으로 러시아에 100억 달러(약 14조 9900억 원)의 전쟁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있다"며 "이는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지금 시점에 제재를 완화하는 것은 명백한 오판"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의 야니스 클루게 경제학자는 WP에 "서방이 러시아의 목을 죌 핵심 열쇠를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상황이 통째로 뒤집혔다"며 "이제 러시아가 원유를 할인해 팔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1억 2800만 배럴의 진실, '새 물량'이 아니라 '음지에서 양지로'
이번 제재 유예의 실질적 효과는 공급량 확대보다 공급 경로의 양성화에 있다. 음성 거래망을 통해 이미 팔리고 있던 원유가 이제 공개 시장에서 정상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제 유가 하락 압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배럴당 최대 30달러에 달했던 '그림자 할인'이 사라지고 정상 단가를 받게 되는 만큼, 같은 물량을 팔아도 수익이 급격히 늘어나는 구조다. 시장에 풀리는 원유의 양이 아니라 러시아가 챙기는 마진이 이번 조치의 핵심 변수인 셈이다.
다만,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공급 충격의 진원지가 이란 수출 차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산 원유 방출은 단기적으로 그 공백을 일정 분량 메울 수는 있다. 실제로 제재 유예 발표 이후 국제 유가는 소폭 하락 전환했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도 약세 압력을 받았다. 유가 안정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단기 목표만 놓고 보면 이 조치는 '효과 있는 카드'인 셈이다. 문제는 그 카드를 꺼낸 대가를 우크라이나 전선이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 재무부의 해명 vs. 현장의 시각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미 선적이 완료된 물량에 국한된 조치이며, 러시아 정부 수익 상당 부분은 채굴 단계에서 부과되는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번 유예로 인한 재정 이득은 제한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에너지 업계 분석가들은 이 설명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1억 2800만 배럴이라는 물량자체가 작지 않고, 가격 상승효과가 이미 거래 구조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며 "30일 유예가 관례화되면 제재 신뢰성 자체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계산, '분열'이 기회다
러시아는 서방의 균열을 증폭시키는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러시아 원유 없이는 안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향후 추가적인 제재 완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클루게 연구원은 "G7(주요 7개국) 간 제재 공조는 현재 매우 취약한 상태"라며 "러시아가 바라는 대로 향후 제재 체제 자체가 해체될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파장
이번 사태는 한국에도 직결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이란 관련 공급 차질에 취약하다. 러시아산 원유가 국제 시장에 대규모로 풀리면 단기적으로 유가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제재 완화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대러시아 사업 재개 가능성도 거론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제재 체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장기 공급 계약 체결에 더 큰 리스크가 생긴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유가라는 내부 정치 변수와 동맹 결속이라는 외부 안보 변수가 충돌하는 이 구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임기 내내 반복해 온 패턴과 닮아있다. 30일이 지난 뒤 제재가 복원될지, 아니면 '제재 피로'가 쌓인 서방 진영이 러시아에 더 넓은 출구를 열어줄지가 이번 전쟁의 다음 국면을 가를 열쇠가 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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