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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쿼리, 호주 주담대 7% 장악… AI 무기로 '100년 빅4 철옹성'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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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쿼리, 호주 주담대 7% 장악… AI 무기로 '100년 빅4 철옹성' 흔들다

10년 만에 점유율 '0→7%'… 예금 잔액 1년 새 25% 폭증
카카오뱅크가 걸었던 길, 호주에서 선취한 맥쿼리… 한국 금융권도 예의주시
맥쿼리 산하 디지털 은행이 약 2조 5000억 호주달러(약 2633조 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7%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확보했다. 불과 10여 년 전 0%에 불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결과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맥쿼리 산하 디지털 은행이 약 2조 5000억 호주달러(약 2633조 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7%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확보했다. 불과 10여 년 전 0%에 불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결과다. 이미지=제미나이3
한국에서 카카오뱅크가 시중은행의 아성을 허물었던 것처럼,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도 비슷한 혁명이 진행 중이다. 주인공은 '백만장자 공장'이라는 별명의 맥쿼리그룹. 헤지펀드·자산운용으로 글로벌 금융계에 이름을 날리던 이 회사가 이번엔 평범한 직장인의 예금통장과 아파트 담보대출을 정조준하고 있다. 디지털 은행이라는 칼날이 100년 가까이 굳어진 호주 금융 지형도를 빠르게 다시 그리고 있다.

거대 공룡 ‘빅4’ 아성 위협하는 맥쿼리의 주요 성장 지표 (2026년 3월 기준).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거대 공룡 ‘빅4’ 아성 위협하는 맥쿼리의 주요 성장 지표 (2026년 3월 기준).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호주 주담대 시장 '4 독점' 10년 만에 균열


호주 금융 시장은 오랫동안 커먼웰스은행(CBA), 호주국립은행(NAB), 웨스트팩(Westpac), ANZ 등 이른바 '4'의 철옹성이었다. 2010년 당시 이들 4개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쥔 점유율은 91%에 달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호주 6대 기업 가운데 4곳이 이 은행들일 만큼, 호주 금융업의 무게추는 빅4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FT)16(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맥쿼리 산하 디지털 은행이 약 25000억 호주달러(2633조 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7%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확보했다. 불과 10여 년 전 0%에 불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결과다.

맷 코민 CBA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투자자 행사에서 "최근 5년 동안 맥쿼리만큼 빠르게 성장한 금융기관은 없었다"고 공개 인정했다. 시장 1위 사업자가 도전자를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4 진영의 경계심이 그만큼 고조됐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브로커망·AI·데이터… '3각 편대'로 빅4 포위


맥쿼리의 전략은 단순하지만 치밀하다. 지점을 열지 않는다. 대신 제3자 모기지 브로커(중개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고객 접점을 최소 비용으로 확장했다. 데이터 분석으로는 연체 위험이 낮은 우량 차주를 정밀 선별해 부실 가능성을 차단했다.

결정적 무기는 자체 개발 인공지능(AI) 시스템 'Q'. 대출 심사부터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고객 서비스 품질도 끌어올린 핵심 인프라다. 전통적인 대형 은행들이 수천 개의 지점 유지비와 주주 배당 압박 사이에서 기술 투자를 늦추는 동안, 맥쿼리는 자산운용·투자은행(IB) 부문 수익을 디지털 인프라에 집중 투입하는 역발상을 택했다.

벤 퍼햄 맥쿼리 개인금융 부문 총괄은 "기존 은행들이 보유한 브랜드 충성도, 지점망, 고객 데이터를 그대로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했다""그래서 처음부터 철저히 도전자의 방식으로 판을 짰다"고 강조했다.
MST 마키(MST Marquee)의 은행 분석가 브라이언 존슨은 "맥쿼리는 장기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을 투입할 의지가 어느 기업보다 강하다""성장 기울기가 최근 수 분기 연속으로 가팔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건 없는 연 4.5%'… 예금주의 관성을 정조준하다


대출 시장 공략과 함께 맥쿼리는 예금 분야에서도 빅4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고물가 환경에서도 대형 은행들은 기존 예금주에게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이자 마진을 극대화해 왔다. 맥쿼리는 복잡한 우대 조건을 모두 없앤 '조건 없는 연 4.5%' 고금리 예금 상품으로 이 틈을 파고들었다.

미셸 불록 호주중앙은행(RBA) 총재는 지난달 연방의회 청문회에서 "호주 예금주들은 더 유리한 금리 조건을 찾아 이동하는 데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직접 지적했다. 맥쿼리는 바로 이 '금융 관성'을 전면 공략했고, 성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전체 예금 잔액은 2000억 호주달러(210조 원)를 돌파하며 4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지난 1월까지 1년간 증가율만 25%에 육박한다.

투자은행 자든(Jarden)의 매튜 윌슨 분석가는 "과거 대면 금융 시대에는 계좌를 옮기는 데 물리적·심리적 장벽이 높았지만,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이 장벽이 거의 사라졌다""맥쿼리는 이미 레이더 밖의 작은 도전자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국 인터넷은행도 주목… '맥쿼리 모델'이 주는 함의


금융권에서는 맥쿼리의 행보가 한국 인터넷 전문은행의 확장 경로와 구조적으로 닮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가 지점 없이 모바일 플랫폼과 저비용 구조를 앞세워 시중은행 고객을 빠르게 흡수한 과정이 맥쿼리의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다만 맥쿼리는 소매금융에 특화된 핀테크가 아니라 글로벌 자산운용 그룹이 은행업으로 체질을 전환한 사례라는 점에서, '대형 기관의 디지털 금융 전환'이라는 새로운 경쟁 모델을 제시한다. 한국 금융당국과 시중은행들이 이 선례를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맥쿼리 은행 부문은 지난해 12월 분기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 13%를 기록하며 독자적인 수익성도 증명했다. 시드니 마틴 플레이스에 우뚝 선 맥쿼리의 현대식 유리 건물이 바로 옆의 고전적 CBA 지점 건물을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장면은 단순한 풍경의 변화가 아니다.

디지털 금융의 공습 앞에서 '역사와 전통'은 더 이상 시장 방어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호주 금융업이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 경고음이 태평양 건너 한국 금융권에도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