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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전쟁] 엔비디아, '그록 추론칩'으로 中 시장 재진격… 젠슨 황 "오픈클로, 챗GPT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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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전쟁] 엔비디아, '그록 추론칩'으로 中 시장 재진격… 젠슨 황 "오픈클로, 챗GPT 잇는다"

그록 LPU 기술 내재화로 화웨이·바이두 '텃밭' 정면 돌파… 발언 하루 만에 中 AI 주가 줄줄이 사상 최고가 경신
삼성·SK하이닉스 HBM 수요 급증 '청신호'… 국내 팹리스엔 생존 경보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1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글로벌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1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글로벌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수출 규제가 장벽으로 서 있는데도 엔비디아는 왜 지금 다시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답은 역설적이게도 그 규제 속에 있다. 인공지능(AI)의 무게축이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집어삼키는 '학습(Training)'에서, 학습된 모델이 실제 답을 내놓는 '추론(Inference)'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우회로가 열렸다. 2026년 봄 엔비디아의 행보는 AI 반도체 전쟁의 전선 자체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젠슨 황 ‘오픈클로’ 찬사에 中 AI 관련주 기록적 폭등.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젠슨 황 ‘오픈클로’ 찬사에 中 AI 관련주 기록적 폭등.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추론 시장의 급부상… 170억 달러짜리 '비장의 패'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AI 추론 시장 규모는 올해(2025) 1061억 달러(159조 원)에서 20302550억 달러(383조 원)로 두 배 이상 팽창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19.2%에 달한다. 챗봇 하나가 질문에 답할 때마다, 자율주행 차량이 차선을 인식할 때마다 추론 연산이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장은 AI 상용화가 깊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 흐름에 정조준한 것이 엔비디아의 '그록(Groq) 카드'. 엔비디아는 지난해 12AI 추론 전문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의 핵심 자산을 약 170억 달러(25조 원)에 라이선스 계약 방식으로 흡수했다(로이터 등). 그록이 독자 개발한 LPU(언어 처리 장치)는 기존 GPU 대비 추론 속도가 최대 2~3배 빠르면서도 전력 소모가 적어 고효율 설계 기술로 업계 주목을 받아 왔다.

엔비디아는 18(현지시각)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 GTC 2026에서 그록 기술을 집약한 새로운 칩 라인업을 공개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복수의 업계 소식통을 인용, 엔비디아가 이 가운데 일부를 중국 시장에 출시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출시 목표 시점은 오는 5월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 칩이 기존처럼 중국 수출을 위해 성능을 낮춘 '다운그레이드' 제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수출 허가를 확보하고 중국 고객사의 구매 주문을 받아 H200 칩 생산을 재개한 데 이어, 그록의 추론 기술까지 더해 화웨이·바이두 등 현지 기업들이 선점한 추론 시장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GTC 기조연설에서 "추론 전환점이 도래했다"고 선언하며 자사의 신형 AI 칩 판매 규모가 2027년까지 최소 1조 달러(150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AI 시장 주요 지표 및 엔비디아 투자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AI 시장 주요 지표 및 엔비디아 투자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오픈클로는 제2의 챗GPT"… 한마디에 대륙이 흔들렸다

하드웨어 공세와 동시에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도 거대한 지각변동이 감지됐다. 젠슨 황 CEOGTC 개막 전날인 17, "오픈클로(OpenClaw)는 확실히 차세대 챗GPT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플랫폼을 "개인이 AI로 할 수 있는 일을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발언의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18일 홍콩·상하이 증시에서 오픈클로 관련 중국 AI주들이 일제히 역대 최고가를 새로 썼다. 미니맥스는 장중 최대 29%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지푸 AI23%, 상하이에 상장된 유클라우드는 13% 이상 올랐다

이 같은 폭등의 배경에는 오픈클로의 실체가 있다. 202411월 출시된 오픈클로는 단순 질의응답을 넘어 사용자의 지시를 이해하고 예약·코드 작성·정보 탐색 등 복합적인 실무 과제를 스스로 수행하는 오픈소스 자율형 에이전트 플랫폼이다. 텐센트·알리바바·바이두 등 중국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앞다퉈 자사 서비스에 통합하며 '오픈클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홍콩 UOB 케이히안(Kay Hian)의 스티븐 룽(Steven Leung) 전무이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젠슨 황의 발언이 AI 에이전트 전반에 대한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며, 오픈클로의 심벌인 '바닷가재(Lobster)' 열풍이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미니맥스의 최신 'M2.7' 모델은 주목할 만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모델은 알리바바 등 대형사 대비 규모는 작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 높아 개발자 시장에서 빠른 채택세를 보이고 있으며, 차세대 모델 'M3'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만 이 열풍에 그늘도 드리운다. 중국 당국은 보안·데이터 통제 이슈를 이유로 일부 정부 기관 및 대형 국유은행에서의 오픈클로 사용을 제한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AI 기술의 급속한 민간 확산과 국가 통제 사이의 긴장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온다


엔비디아의 추론 시장 강화 전략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이중적 신호를 보낸다.

우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다가온 수요 폭증 '청신호'.

추론 반도체의 특성은 학습용 칩과 다르다. 학습 단계에서는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는 GPU가 주역이지만, 추론 단계에서는 초고속·저지연 메모리가 병목이 된다. 마켓앤마켓의 분석에서도 HBM(고대역폭메모리) 부문이 AI 추론 메모리 시장의 65.3%를 차지할 정도로 지배적이다.

엔비디아가 그록 LPU와 차세대 베라 루빈(Vera Rubin) 플랫폼을 결합해 추론 생태계를 확장할수록, HBM3E·LPDDR5X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는 한 단계 더 올라설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글로벌 최대 AI 칩 고객사의 제품 영역이 확대되는 셈이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이날 아시아 증시에서 9% 가까이 오르며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학습 칩에 비해 추론 칩은 실시간 응답성이 필수여서 메모리 대역폭 요구가 훨씬 다양해진다""중국 추론 시장이 열릴수록 HBM 공급선 다변화 요구도 커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국내 팹리스·소부장에는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엔비디아가 그록의 설계 기술을 내재화하며 추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경우, 자체 AI 가속 칩 개발에 나선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 엔비디아 에코시스템 밖에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AI 추론 시장에서는 CUDA 기반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종속성이 학습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 국내 팹리스들의 기회였는데, 엔비디아가 그록 LPU를 흡수하면서 이 틈새마저 메워나가는 양상이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 입장에서는 엔비디아의 공급망 내 비중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실적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AI 전쟁이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훈련시키느냐"는 학습의 경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누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실행하느냐"는 추론과 에이전트의 경쟁이다. 엔비디아가 그록의 기술력을 흡수해 중국 시장 재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단순한 매출 방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에이전트가 결합된 생태계를 선점하지 못하면, 1위 자리도 위태롭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미국의 수출 규제라는 장벽 앞에서도 엔비디아는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중국 시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추론 시대'의 서막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