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톤 비크레드, 지난달 수익률 -0.4% 기록… 2022년 9월 이후 첫 월간 손실
AI에 무너진 소프트웨어 대출 담보… 메달리아 장부가 두 달 만에 17% 증발
1분기 2조 2700억 원 순유출·경쟁사도 환매 제한… 2조 달러 시장 옥석 가리기 돌입
AI에 무너진 소프트웨어 대출 담보… 메달리아 장부가 두 달 만에 17% 증발
1분기 2조 2700억 원 순유출·경쟁사도 환매 제한… 2조 달러 시장 옥석 가리기 돌입
이미지 확대보기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각) 블랙스톤의 480억 달러(약 72조 3100억 원) 규모 사모대출 펀드 비크레드가 지난달 -0.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기록한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2022년 당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초고속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던 시기로, 그 뒤 3년 넘게 플러스 수익률을 이어 온 비크레드가 무너진 것은 2조 달러(약 3000조 원) 규모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에 구조적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AI가 무너뜨린 소프트웨어 담보… 대출 부실의 '뇌관'으로
이번 손실의 진원지는 AI 기술이 촉발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가치 붕괴다. 비크레드는 지난달 보유 자산 일부의 장부 가치를 하향 조정(마크다운)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했는데, 핵심은 고객 경험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메달리아(Medallia)'에 제공한 대출이었다.
사모펀드 운용사 토마 브라보(Thoma Bravo)는 2022년 메달리아를 인수하면서 블랙스톤을 포함한 사모대출 기관들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차입했다. 당시만 해도 구독 기반의 반복적 수익 구조를 갖춘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사모대출의 황금 담보'로 불렸다. 그러나 챗GPT 등 생성형 AI의 급부상이 메달리아가 제공해 온 고객 서비스·데이터 분석 영역을 빠르게 잠식했다. 성장이 정체된 메달리아는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블랙스톤이 재무 자문사들에 보낸 서한에 따르면, 회사는 2024년 말 기준 달러당 94센트로 책정하던 메달리아 대출 가치를 지난달 말 78센트로 낮췄다. 두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장부 가치가 17%가량 증발한 셈이다. 토마 브라보 공동 창업자 올랜도 브라보는 미국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인수 당시 해당 기업의 성장률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 너무 비싼 값을 치렀다"며 뒤늦은 실책을 시인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메달리아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 전환 파고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사모대출 포트폴리오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대체투자 담당자는 "AI가 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면서 사모펀드들이 2019∼2022년 고점에 인수한 소프트웨어 자산의 가치 재평가가 불가피해졌다"며 "마크다운 사례가 잇따를 경우 사모대출 펀드들의 수익률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매 요구 봇물… 경쟁사들도 잇달아 인출 제한
수익률 하락은 즉각 투자자 이탈로 이어졌다. 블랙스톤에 따르면 비크레드에서 올해 1분기에만 17억 달러(약 2조 5600억 원)의 순유출이 발생했다. 환매 요청 규모가 전체 자산의 7.9%까지 치솟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블랙스톤은 규정 한도 안에서 모든 환매 요청을 수용했지만, 경쟁사들의 행보는 달랐다. 모건스탠리, 클리프워터, 블랙록 계열의 HPS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 등은 환매 요청이 자체 한도를 넘어서자 인출 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제이피모건 체이스의 케네스 워딩턴 분석가는 "자금 유입 둔화와 환매 요청 증가는 비크레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모대출 시장 전반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변동금리 기반인 사모대출의 매력은 Fed가 금리 인하 기조로 전환한 이후 이미 한풀 꺾인 상태다. 비크레드의 최근 1년 총수익률도 6.4%로 내려앉았다.
블랙스톤 "단기 조정일 뿐"… 시장은 구조적 취약성 주목
블랙스톤은 "비크레드는 설정 이후 연평균 9.5%의 수익률을 유지해 왔으며, 최근 1년 수익률 6.4%도 비교 지표인 레버리지 대출 대비 2.5%포인트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결과는 시장 변동성이 클 때 사모대출이 지닌 방어적 이점을 오히려 입증한 것"이라며 일시적 조정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월가에서는 사모대출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경고하는 시각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사모대출은 전통 은행 대출이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특성상 경기 침체기에 부실 위험이 크고, 특히 AI 혁명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위협하면서 연쇄 마크다운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확산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잔혹사'의 서막… 한국 기관 자금도 안전지대 아니다
한때 안정적인 고수익 대안 자산으로 각광받던 사모대출이 기술 격변기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취약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차입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이미 한계에 다가선 상황에서, AI가 담보 자산인 기업 실적까지 흔드는 이중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모대출 시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옥석 가리기'에 돌입한 지금, 관련 펀드에 수조 원을 투입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점검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기술 변화에 뒤처진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사모대출 펀드들의 마크다운 행렬이 본격화한다면, 그 충격파는 비크레드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모대출 자금, AI 데이터센터로 재편… '옥석 가리기'가 만든 새 투자 지형
다만 이번 사태가 AI 산업 전반의 투자 위축으로 번질 것이라는 전망은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흐름을 읽는다. 메달리아 같은 레거시 소프트웨어 기업의 부실화는 AI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구형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경고일 뿐, AI 인프라 투자 자체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선도 기업들의 실적은 여전히 견고하고, 구글·메타 등 빅테크들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 경쟁과 클라우드 인프라 선점을 위해 데이터센터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사모대출 자금의 흐름도 AI 데이터센터 건설·운영과 같은 고성장 핵심 인프라 분야로 재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손실은 사모대출 시장 내 자산 배분의 질적 변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AI 거대 트렌드 자체를 꺾는 사건이 아니라,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곧 생존을 가르는 시대가 됐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낡은 비즈니스 모델에 묶인 사모대출은 마크다운의 늪에 빠지고, AI 인프라를 뒷받침하는 대출은 새로운 황금 담보로 부상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속도로 사모대출 시장의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