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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60% 폭등에도 돈 못 푼다… EU “에너지 보조금 시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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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60% 폭등에도 돈 못 푼다… EU “에너지 보조금 시대 끝”

국제유가·가스비 급등에 재정 위기 경고등… 2022년 ‘현금 살포’ 실책 되풀이 않기로
코로나·전쟁 이어 6년 새 세 번째 쇼크… “재정 여력 바닥, 한시적·표적 지원만 허용”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 에너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라는 전례 없는 강경 메시지를 던졌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 "에너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라"는 전례 없는 강경 메시지를 던졌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 "에너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라"는 전례 없는 강경 메시지를 던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6(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가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민심 이반을 막으려는 각국 정부의 '선심성 재정 지출'을 재정위기의 도화선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제동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재정으로 막았던 위기, 이젠 재정이 위기2022년과는 딴판


단 예르겐센(Dan Jørgensen) EU 에너지 담당 위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특정 분야의 충격이 사회 전체로 번질 위험이 크다며 각국 정부의 과도한 지원책을 정조준했다. 이번 사태는 미군의 이란 공습 이후 유럽 내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단기간에 약 60% 폭등하고 경유 및 항공유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본격화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EU의 태도 변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만 해도 EU는 막대한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용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국가 부채 급증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EU 집행위는 이번 논의에서 에너지 보조금, 가격 상한제 등의 조치를 반드시 시한부로 운영하고 지원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럽연합(EU)이 직면한 2026년 이란발 에너지 쇼크는 재정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했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는 성격이 판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코로나19 직후의 상대적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유연한 자금 집행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누적된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를 웃돌며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금리 기조가 유지됐던 4년 전과 달리 지금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까지 겹친 상황이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원회는 과거의 보편적 지원 대신 '철저한 긴축''표적 지원'을 회원국에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위기가 재정 여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실전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폴란드 감세 강행’ vs 브뤼셀 재정 준칙정면충돌


EU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가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탈리아와 폴란드, 스페인은 이미 연료세를 인하하며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정부는 브뤼셀에 "재정 준칙을 완화해달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Valdis Dombrovskis) EU 경제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지난달 말 재무장관 회의에서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국방비 급증으로 각국 정부의 재정적 화력은 사실상 바닥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EU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19년 말 77.8%에서 지난해 3분기 82.1%까지 치솟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범위가 넓고 기한이 없는 지원책은 수요를 과도하게 자극해 물가 잡기를 방해할 것이라며, 반드시 취약계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표적 지원에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횡재세카드 재부상… 시장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에너지 기업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Windfall tax)’ 도입 논의도 다시 불붙고 있다. 독일, 스페인 등 5개국 재무장관은 지난 3일 공동 서한을 통해 EU 차원의 통합된 횡재세 도구 마련을 촉구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횡재세가 기업의 에너지 전환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EU의 긴축 기조가 국채 금리 상승과 유로화 약세를 자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으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할 경우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의 경기 침체 속도가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유럽발 재정 신뢰 위기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에 던지는 통찰, ‘에너지 안보가 곧 재정 안보


유럽의 이번 결정은 우리에게도 큰 경고를 알린다. 한국 역시 유가 상승기에 유류세 인하 등 재정 수단을 동원해왔으나, 고금리와 세수 부족 상황에서 재정의 한계는 남의 일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과 투자자들은 재정 상황의 변화를 파악하려면 다음 세 가지 지표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유럽 국채 금리 추이다.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면 국채 금리가 튀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둘째, EU 내 횡재세 입법 속도다. 이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셋째, 유럽 제조업 가동률이다. 보조금이 끊긴 상황에서 고유가를 견디지 못한 유럽 공장들이 멈춰 선다면, 이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한국의 대유럽 수출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위기는 돈을 풀어 해결하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효율 혁신을 통한 근본적인 수요 감축 전략을 서둘러야 하며, 기업들은 고에너지 비용 구조를 전제로 한 경영 시나리오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재정이 더 이상 안전판이 아닌 시대, 에너지 위기는 곧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