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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의 실리콘 장막, 삼성 2나노를 조준하다"... 인텔에만 문 열어준 '제로 트러스트'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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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의 실리콘 장막, 삼성 2나노를 조준하다"... 인텔에만 문 열어준 '제로 트러스트'의 칼날

미 국방부 하드웨어 보안 표준 의무화의 파장... 인증 지연에 발목 잡힌 삼성 파운드리의 위기
안보 동맹 너머의 냉혹한 자국 우선주의... 방산 반도체 수주전에서 드러난 미국의 인텔 밀어주기
미 워싱턴 소재 펜타곤 청사의 모습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 워싱턴 소재 펜타곤 청사의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미국 국방부가 군사 장비와 국가 핵심 인프라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보안 표준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한국 반도체 산업에 거대한 장벽을 세웠다.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칩의 설계부터 제조 전 과정을 검증하는 이른바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아무도 믿지 않는다)' 원칙이 파운드리 업계의 새로운 생존 조건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텔이 이 표준을 선점하며 승승장구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까다로운 보안 인증 절차에 가로막혀 천문학적 규모의 방산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 매체인 디펜스원(DefenseOne)이 4월 7일 '펜타곤의 제로 트러스트 실리콘 표준과 파운드리의 보안 장벽'이라는 제하의 아티클을 통해 전한 바에 의하면, 미 국방부는 최근 조달 시장에 진입하는 모든 첨단 반도체에 대해 하드웨어 수준의 제로 트러스트 인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칩 내부에 악성 코드가 심어지거나 공급망 과정에서 변조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현재 삼성전자의 보안 인증 절차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인텔과의 수주 경쟁에서 치명적인 열세에 놓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안이 곧 성능인 시대 펜타곤의 변심


과거 펜타곤은 칩의 연산 속도와 전력 효율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으나 이제는 보안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제로 트러스트 칩 표준은 설계 자산의 출처부터 제조 공정의 투명성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검증한다는 원칙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세 공정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부가 요구하는 폐쇄적이고 엄격한 공급망 관리 인증을 통과하는 데 고전하며 방산 반도체 주도권을 내줄 판국이다.

안보 동맹의 배신인가 인텔의 안방 독식인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인텔이다. 인텔은 미국 내 제조 시설을 기반으로 펜타곤의 보안 요구사항에 최적화된 하드웨어 신뢰점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인 인텔에 인증 통과를 위한 밀착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동맹국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인텔보다 훨씬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하는 역차별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인증 지연이 불러온 수조 원대 수주 탈락 위기


삼성전자가 펜타곤의 보안 인증에서 고전하는 사이, 미 국방부의 차세대 전투기 및 무인 드론 시스템에 들어갈 핵심 AI 칩 수주전은 사실상 인텔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방산 반도체는 일반 가전용 제품보다 단가가 높고 한 번 채택되면 수십 년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알짜 시장이다. 여기서 밀려난다는 것은 단순히 계약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 전략 자산 생태계에서 삼성의 이름이 삭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리콘 지문 기술의 주권과 삼성의 기술적 과제


펜타곤이 요구하는 핵심은 칩마다 고유한 지문을 심어 추적하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인 보안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 국방부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미국산 보안 아키텍처를 칩에 내재화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삼성 입장에서는 기업 비밀인 공정 데이터를 미 당국에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국의 보안 표준에 맞춰 공정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방산을 넘어 민간 클라우드까지 번지는 보안 장벽

문제는 이러한 보안 인증 요구가 방산 시장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 국방부의 표준은 곧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민간 클라우드 기업들의 보안 가이드라인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삼성전자가 펜타곤의 인증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한다면, 향후 거대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용 서버 칩 수주전에서도 보안 미달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의 결단이 필요한 안보 경제의 고차방정식


이제 반도체는 경제 논리만으로 풀 수 없는 안보 자산이 되었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미 정관계 인맥을 가동해 보안 인증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더욱 굳건해지는 미국의 반도체 민족주의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기술적 초격차를 넘어 안보적 신뢰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가 삼성 파운드리의 명운을 결정지을 최후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aed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