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르 53.6% 압승·138석…EU 동결 지원금 29조 원 해제 기대감에 포린트화 급등
트럼프·머스크도 지지한 오르반 퇴진…동유럽 지정학 지형 급변 전망
트럼프·머스크도 지지한 오르반 퇴진…동유럽 지정학 지형 급변 전망
이미지 확대보기16년간 민주주의를 "비자유주의로 재설계"했다고 자부하던 오르반의 체제가 결국 이념이 아닌 장바구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헝가리 유권자들이 12일(현지시각) 투표소에서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EU 이탈 노선에 대한 냉혹한 경제적 심판이었다.
이날 치러진 헝가리 의회 총선에서 야권 티서(Tisza)당의 페테르 마자르(Péter Magyar·45) 대표가 53.6%를 득표해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62)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개표율 98% 기준 전체 199석 가운데 티서당은 138석을 확보해 헌법 개정 요건인 의회 3분의 2(133석)를 5석 웃돌았다. 투표율 79.5%는 헝가리 민주화 37년 역사상 최고치다. 오르반이 이끄는 피데스(Fidesz)당은 37.8% 득표, 55석 확보에 그쳤다.
다음은 BBC·WSJ·로이터·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이 12일 (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을 종합 분석하였다
오르반이 진 3가지 이유: 경제·스캔들·세대교체
첫째, 경제 실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올해 2월 발간한 헝가리 총선 전망 보고서는 IMF 추산 2025년 헝가리 경제성장률을 0.7%로 제시하면서, 국민 가계 구매력이 EU 평균의 70% 수준까지 추락했다고 분석했다.
EU로부터 부패·사법 독립 침해를 이유로 동결된 약 170억 유로(약 29조 원)의 지원금도 경기 회복을 막는 구조적 족쇄였다. 헝가리는 2022년 물가상승률 14.5%, 2023년 17.6%로 2년 연속 EU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2023년 1월에는 월간 기준 26.2%까지 치솟았다.
둘째, 선거 직전 터진 외교 문서 유출 의혹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페테르 시야르토(Péter Szijjártó) 외무장관이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i Lavrov)와 EU 내부 문서 공유 및 서방 제재 완화를 논의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선거 일주일 전 공개됐다.
"러시아 스파이"라는 구호가 유세장에서 터져 나왔다. 피데스는 EU의 선거 개입이라며 반발했지만, 국가정보조사국(NNI) 간부와 군 장교가 잇따라 진영을 이탈하면서 역풍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30%를 득표하며 돌풍을 예고했고, 이번에 마침내 정권 교체를 완성했다. 피데스 텃밭이던 농촌에서도 통한 반부패·민생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
WSJ은 이에 대해 "피데스가 고속도로와 도심 주요 도로를 마자르를 범죄자로 묘사한 광고판으로 도배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EU 지원금 29조 원 해제 전망…시장은 이미 선반영
금융 시장은 투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움직였다. 이투데이는 개표 중간 결과가 속속 나오는 동안 헝가리 포린트(HUF)화가 달러 대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데이터에 따르면 포린트화는 최근 한 달 사이 달러 대비 3% 넘게 올랐다. 마자르가 EU와의 관계 정상화로 동결 지원금 약 170억 유로(약 29조 원)를 조기에 풀 수 있다는 기대가 환율에 선반영된 것이다.
마자르는 당선 직후 첫 해외 방문지로 폴란드 바르샤바를 택해 1000년 역사의 양국 우호 관계를 재확인한 뒤, 이어 브뤼셀을 방문해 지원금 해제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같은 날 "헝가리는 유럽을 선택했다. 유럽도 항상 헝가리를 선택해 왔다"고 환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도 즉각 축하 성명을 냈다.
트럼프·러시아 모두 패자…마자르가 넘어야 할 세 겹의 벽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오르반이 이기면 "미국의 경제력을 총동원해 헝가리를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을 선거 일주일 전 직접 부다페스트에 파견했다. 그러나 오르반 패배 후 트럼프는 이와 관련한 공개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척 슈머(Chuck Schumer) 상원 원내대표는 "독재자가 되려는 자들은 결국 환영받지 못하는 날이 온다"고 했고, 하킴 제프리스(Hakeem Jeffries) 하원 원내대표는 "강경 보수 의원들이 11월 다음 차례"라고 11월 중간선거와 연결 지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X에 "소로스 재단이 헝가리를 장악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오르반은 패배 수락 연설에서 "결과는 분명하고 뼈아프다"고 인정하면서도 피데스 대표직 사퇴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마자르 정부 출범까지 관리 내각을 이끌게 된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르반을 통해 EU 내부를 흔드는 전략을 구사해 왔으나, 이번 선거로 "동유럽 내 가장 강력한 우군"을 잃어 영향력 행사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38석의 압도적 위임을 받은 마자르 앞에는 오르반이 16년간 쌓아온 사법부 장악, 국영 미디어 편향, NER(국가 후원 기업 네트워크) 이권 구조라는 세 겹의 벽이 남아 있다.
권력 교체는 단 하루 만에 이뤄졌지만, '오르반 없는 헝가리'가 진정한 민주주의 정상화로 이어질지는 부다페스트의 새 정부가 앞으로 100일 동안 무엇을 먼저 움직이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 경제 접점: 배터리·바이오 공급망 변수
헝가리의 친유럽 복귀는 한국 수출 기업에도 계산이 필요한 변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바이오의약품 수출 상위 5개국에 헝가리가 포함됐으며, 이 상위 5개국이 전체 수출의 68.4%를 차지했다.
경기 회복 궤도에 오른 헝가리가 EU 규제 환경에 다시 편입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 국내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들의 수주 환경에 긍정적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배터리 분야도 주목된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EU 역내 공급망 기준 강화에 맞춰 동유럽 생산 거점 확대를 추진해온 상황에서, 헝가리 법치 환경 정상화는 장기 투자 리스크 계산을 바꾸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마자르가 일부 핵심 현안에서 오르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어 EU와의 실질적 관계 복원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