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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LA급 원잠 보이스함 오버홀 전격 취소…30억 달러 '밑 빠진 독' 결국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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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LA급 원잠 보이스함 오버홀 전격 취소…30억 달러 '밑 빠진 독' 결국 포기

8억 달러 쏟아붓고 공정률 22%…추가 비용만 19억 달러 더 필요
숙련 인력·예산, 버지니아급·콜롬비아급 건조로 전면 재배치
2003년 4월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로 귀환하는 USS 뉴포트 뉴스함(오른쪽) 옆에 정박 중인 USS 보이스함(왼쪽). 1992년 취역한 LA급 공격 잠수함 보이스함은 2015년을 끝으로 실전 배치에서 이탈한 뒤 10년 가까이 항구에 계류되며 조선 지연의 상징이 됐다. 미 해군은 30억 달러에 달하는 오버홀 비용을 감당하는 대신, 신형 버지니아급 잠수함 건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사진=게티이미지/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003년 4월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로 귀환하는 USS 뉴포트 뉴스함(오른쪽) 옆에 정박 중인 USS 보이스함(왼쪽). 1992년 취역한 LA급 공격 잠수함 보이스함은 2015년을 끝으로 실전 배치에서 이탈한 뒤 10년 가까이 항구에 계류되며 조선 지연의 상징이 됐다. 미 해군은 30억 달러에 달하는 오버홀 비용을 감당하는 대신, 신형 버지니아급 잠수함 건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사진=게티이미지/연합뉴스

미국 해군이 10년 가까이 항구에 묶여 있던 로스앤젤레스(LA)급 공격 잠수함 USS 보이스(SSN-764)의 대규모 분해정비(오버홀) 사업을 전격 취소했다. 총 수리비가 30억 달러(약 4조 4500억 원)에 육박하는 반면, 수리를 마쳐도 잔여 수명이 20%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현실이 결국 결정을 이끌어 냈다.

미국은 1976년부터 총 62척의 LA급 공격잠수함을 취역시켰으며 36척은 퇴역하고 23척이 작전 배치돼 있으며 두척이 훈련용으로 계류돼 있다. 길이 110m, 수중 배수량 6818t인 LA급 잠수함은 수중 속도가 시속 25노트(약 46km)이며 토마호크 함대지 순항미사일, 하푼 대함미사일, Mk 48 중어뢰와 기뢰로 무장하고 있다.

존 펠런(John Phelan) 미 해군장관은 10일(현지 시각)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어느 시점에는 손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사업 중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보이스함에 이미 약 8억 달러(약 1조 1000억 원)를 투입했지만 공정률은 22%에 그쳤고, 완공을 위해서는 19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치가 맞지 않는다(The math really does not work)"는 그의 표현은 이번 결정의 본질을 압축한다.

냉전 유물의 기나긴 방치…전투력 상실까지

보이스함은 1992년 취역한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마지막 실전 배치는 2015년이었고, 이듬해인 2016년 정기 오버홀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 해군 조선소의 드라이도크(건조대) 부족과 유지보수 물량 적체로 인해 대기 행렬에서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정비가 계속 미뤄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보이스함은 2016년 작전 인증을 상실했고, 2017년에는 잠수 능력마저 박탈당해 사실상 전투함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다.

오버홀 착수 예정 시점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2024년에야 해군은 약 12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 규모의 오버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계약 이후 실태를 들여다보자 비용 추산은 당초 전망을 훌쩍 넘어섰다. 현재의 일정대로라면 오버홀 완공은 2029년이며, 그때쯤이면 이 잠수함은 약 15년간 실전에서 이탈한 채로 항구에 묶여 있었던 셈이 된다.

"버지니아급 비용의 65%, 수명은 20%" 투자 대비 최악


펠런 장관이 사업 취소를 결심한 핵심 근거는 냉혹한 비용 대비 효과 분석이다. 그는 "보이스함 수리비는 신형 버지니아급 잠수함 건조비의 65%에 이르지만 수리 완료 후 기대 수명은 고작 20%, 실질적으로는 약 3회의 배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투자 수익률 측면에서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못을 박았다.

미 해군 장관 존 필랜은 해군이 최신형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자원을 우선 배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 해군 장관 존 필랜은 해군이 최신형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자원을 우선 배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로이터


이번 결정에는 재정 논리뿐 아니라 전략적 판단도 깊이 깔려 있다. 1992년 취역한 보이스함은 주로 대양(大洋) 전투를 상정한 냉전형 잠수함이다. 반면 버지니아급은 더 조용한 저소음 설계를 갖추고 있으며, 정보 수집·특수작전·연안 분쟁 해역 작전 등 현대전 환경에 최적화된 다목적 잠수함이다. 낡은 플랫폼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것보다 미래 전력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전략적 판단이 사업 취소를 뒷받침한다.

보이스함 문제는 의회와 군 수뇌부에서도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렸다. 지난해 6월 인준 청문회에서 마이크 라운즈(Mike Rounds) 상원의원(공화당·사우스다코타)은 "이제 그냥 전원을 끊을 때가 됐느냐"고 직격하기도 했다. 달릴 코들(Daryl Caudle) 미 해군 작전부장은 이 상황을 두고 "잠수함 전력의 심장에 꽂힌 단검"이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라고 개탄했다.

조선 인력난이 부른 비극…중국 팽창에 맞선 선택과 집중


이번 결정의 또 다른 축은 극심한 조선 인력난이다. 펠런 장관은 "잠수함 건조 분야, 특히 조선소에서의 최대 제약 요인은 노동력과 엔지니어링 인재"라고 진단하면서 "보이스함에 묶인 귀중한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을 버지니아급 또는 콜롬비아급 전략핵잠수함(SSBN) 건조 현장으로 전환 배치해 인도 일정을 최대한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중국과의 해군력 경쟁이라는 거시 전략이 놓여 있다. 중국은 이미 함정 숫자 기준으로 세계 최대 해군력을 구축한 상태이며, 미국은 잠수함 전력의 양적·질적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오버홀 비용을 허공에 날리는 대신 최신예 잠수함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대중(對中) 전략 경쟁에서의 유일한 현실적 선택지라는 인식이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보이스함의 퇴장은 단순한 함정 한 척의 이야기가 아니다. 펠런 장관은 실패 원인에 대해 "한 가지만 탓할 수는 없다"면서 "공학적 복잡성, 코로나19 팬데믹 여파, 방산 산업 기반에 가해진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해군 수뇌부는 이번 취소 조치를 부실 조달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구조적 재검토의 신호탄으로 제시하고 있다. 펠런 장관은 "우리는 모든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지연과 비용 초과를 관행으로 받아들여 온 과거의 문화를 타파하고 '근본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어제 해결하길 원한다. 우리는 더 기강 있게,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방산 개혁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