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혈관 막히나… 호르무즈 봉쇄가 가져온 소재 수급난
한국 반도체, ‘구조적 취약성’ 넘어 ‘공급망 다변화’의 성적표를 확인해야 할 때
한국 반도체, ‘구조적 취약성’ 넘어 ‘공급망 다변화’의 성적표를 확인해야 할 때
이미지 확대보기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일본의 주요 포토레지스트(감광액) 공급업체들이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원자재 조달 차질을 공식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물류 지연을 넘어,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공정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수급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신호다.
나프타 끊기자 EUV 라인 ‘가동률 비상’
반도체 제조에서 포토레지스트는 공정의 정밀도를 결정짓는 필수 소재다. 특히 빛의 파장이 극도로 짧은 EUV 공정은 소재 민감도가 매우 높다. 나프타에서 화학적으로 정제된 핵심 용매인 PGME와 PGMEA 없이는 양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나프타 수입길이 막히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EUV 라인은 가동률 저하라는 치명적인 하방 압력을 받게 된다.
일본의 공급 독점은 한국 기업에 거대한 리스크다. JSR, 도쿄 오카 코교, 신에츠 케미컬, 후지필름 등 일본 4대 소재 기업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 시장의 76%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안전한가?’… 공급망 지형의 변화
후지경제(Fuji Keizai)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 수요의 약 26%를 차지하는 대만(TSMC 중심)이 1위, 25%대를 기록한 한국이 2위로 초박빙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제조 패권이 두 국가에 집중된 상황에서, 과거에는 한국의 높은 일본 의존도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는 구조적 취약점으로 지목되곤 했다. 실제 첨단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대일 의존도는 여전히 70~80%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의 공급망 지형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국은 동진쎄미켐 등 국내 기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한편, 듀폰(DuPont)과 같은 글로벌 소재 기업의 국내 생산 라인을 유치하며 공급망 다변화에 성공했다.
또한, 대만 TSMC 역시 일본 신에츠, JSR 등으로부터 핵심 소재를 대량 공급받고 있으며, 중국발 지정학적 긴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핵심은 일방적인 의존도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기술 자립을 이뤄내느냐는 ‘속도전’에 달려 있다.
중국의 ‘역설적 회복력’과 시사점
반면 중국은 성숙 공정 노드 중심의 자급자족 전략과 국가 차원의 공급망 강화에 집중하며, 다른 대응 양상을 보인다. ICWise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수입 포토레지스트 중 일본산 비중은 56% 수준이다. 쉬저우 B&C 화학 등 자국 기업들의 역량 확대도 이를 뒷받침한다.
나틱시스(Natixis) 기업투자은행의 게리 응 수석 경제학자는 "전쟁의 지속 기간이 관건"이라며, 분쟁 장기화가 AI 데이터 센터 확장과 칩 생산 전반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첨단 소재 분야에서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교체 시 수율 저하라는 숙제는 안고 있으나, 단기적 공급 중단 시나리오에서는 한국이나 대만보다 반사이익을 얻거나 충격을 최소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자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 3가지
지금 시장은 수개월 치의 ‘안전 재고’를 활용해 버티고 있다. 하지만 물류 병목이 장기화하면 재고 소진 이후의 시나리오는 불투명하다. 시장의 변동성을 판단하기 위해 투자자가 예의주시해야 할 지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재개 여부다. 나프타 공급의 대동맥이다. 유가 변동을 넘어 물류 정상이 확인되어야 공급난이 해소된다.
둘째, 일본 핵심 소재 업체의 가동률 공시 내용이다. JSR 등 주요 공급사의 원료 확보 상황이 한국 기업의 미래 생산량을 가늠하는 선행 지표다.
셋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첨단 노드 수율이다. 소재 부족은 가장 먼저 민감한 EUV 공정의 수율 저하로 나타난다.
전쟁과 공급망의 충돌은 기술 혁신 속도보다 빠르게 산업을 무너뜨린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시간으로 주가에 반영되는 ‘안보 자산’이다. 호르무즈의 파도가 우리 계좌에 닿기 전, 공급망의 틈새를 냉정하게 살펴야 할 시점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