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노모토·디스코 등 '초크 포인트' 장악… 미·중 패권 전쟁의 숨은 승자
韓 반도체 생태계, 위기인가 기회인가… 일본발 공급망 재편의 명암
韓 반도체 생태계, 위기인가 기회인가… 일본발 공급망 재편의 명암
이미지 확대보기조미료 회사가 설계한 AI의 뼈대
세계적인 AI 칩 제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크 포인트(공급의 급소)'는 의외의 곳에 있다. 바로 식품 기업 아지노모토다. 이 회사가 개발한 'ABF(Ajinomoto Build-up Film)'는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 기판의 핵심 절연재다. 전 세계 최첨단 CPU와 GPU의 98% 이상이 이 필름을 사용한다. 반도체 설계 구조가 아무리 바뀌어도 이 필름 없이는 물리적 칩 구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지배력은 단순히 소재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회로 패턴을 웨이퍼에 새기는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한다. 실리콘 웨이퍼 시장의 53%를 신에쓰와 SUMCO가 장악하고 있고, 웨이퍼를 깎고 다듬는 박막화·절단 공정의 디스코(Disco)와 반도체 성능을 검증하는 어드반테스트(Advantest) 역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한다. AI 서버 랙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이들 기업의 매출이 비례해서 증가하는 '낙수 효과'가 이미 수년 전부터 고착화한 상태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공급망 무기화'
2019년 한국을 대상으로 한 화학제품 수출 규제와 최근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을 통제하는 '지배자'적 위치를 확보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추격하고 있지만, 일본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정밀 공학 노하우와 소재 배합 데이터라는 장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 반도체, '탈(脫) 종속' 없이는 미래 없다
일본의 지배력 확대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양날의 검이다.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고 현지 생태계와 결합하는 현상은, 한국이 소부장 공급망에서 일본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구마모토에서 발생한 'TSMC 쇼크'는 반도체 공장 유치가 단순한 경제 활성화를 넘어 인프라와 인력, 주거 환경 등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동반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기술 종속'의 탈피다. 일본은 AI 붐의 과실을 직접적인 칩 제조가 아닌 '공정 필수 소재'를 통해 안전하게 취한다. 한국이 메모리 1위 자리를 지키려면 메모리 성능 경쟁을 넘어, 일본이 장악한 패키징 소재와 검사 장비 분야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전략적 로드맵이 시급하다.
이제 반도체 시장은 '누가 더 싸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안정적인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축하느냐'의 시대로 이동했다. 일본의 초크 포인트 전략을 단순한 위협으로 치부할 때가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고도화된 공급망 생태계를 확보하기 위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AI 시대의 승자는 칩을 설계하는 미국도, 위탁 생산하는 대만도 아닌, 결국 그 물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들의 손끝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