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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차세대 호위함 '조립 순서 오류'…2700억 추가 손실에 10년대 말 배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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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차세대 호위함 '조립 순서 오류'…2700억 추가 손실에 10년대 말 배치 위기

선도함 HMS 벤처러·2번함 액티브 동시 결함…2023년 목표 → 2027년 → 또 지연
"제독이 함정보다 많은 해군"…오커스·Type 31 동시 좌초로 영국 해군력 추락
영국 해군 차세대 범용 호위함 Type 31 인스퍼레이션급 건조 현장. 선도함 HMS 벤처러와 2번함 HMS 액티브가 비순차 조립 오류로 최대 1억 4000만 파운드의 추가 수정 비용과 대규모 일정 지연에 직면했다. 당초 2023년이었던 취역 목표가  이번 10년대 말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영국 해군력 재건 구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영 국방부이미지 확대보기
영국 해군 차세대 범용 호위함 Type 31 인스퍼레이션급 건조 현장. 선도함 HMS 벤처러와 2번함 HMS 액티브가 비순차 조립 오류로 최대 1억 4000만 파운드의 추가 수정 비용과 대규모 일정 지연에 직면했다. 당초 2023년이었던 취역 목표가 이번 10년대 말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영국 해군력 재건 구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영 국방부

한때 세계 해양을 지배했던 영국 왕립해군이 차세대 호위함의 기본적인 조립 순서 오류라는 굴욕적 실수를 인정하며 추가 비용과 대규모 일정 지연에 직면했다. 오커스(AUKUS) 핵잠수함 사업 차질과 겹치면서 영국 해군력 전반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 영국산 Type 31을 차세대 호위함으로 검토 중인 뉴질랜드·인도네시아 등 잠재 구매국들의 신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군사 전문 매체 19포티파이브(19FortyFive)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영국 조선업체 밥콕(Babcock)이 왕립해군 차세대 범용 호위함 Type 31 인스퍼레이션급(Inspiration-class) 초기 2척을 "비순차(out-of-sequence)" 방식으로 조립했음을 공식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완성 단계에서 대규모 재작업이 불가피해졌으며, 수정 비용은 최대 1억4000만 파운드(약 2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순차 조립 장기 후폭풍"…선도함·2번함 동시 결함, 2027년 목표도 사실상 폐기


밥콕은 공식 성명에서 "설계 변경과 프로그램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비순차 조립 활동의 장기적 영향으로 인해 의장(outfitting) 단계에서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재작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재작업 건수 자체가 완전히 예상 밖은 아니지만, 완성 후기 단계에서 수행되면서 더 복잡하고 더 비용이 많이 드는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으나, 정작 어떻게 이런 오류가 발생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함정은 선도함 HMS 벤처러(HMS Venturer)이며, 2번함 HMS 액티브(HMS Active)도 동일한 조립 오류의 영향을 받았다. Type 31 사업의 일정 표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HMS 벤처러는 원래 2023년 취역이 목표였고, 12척 전 함정이 2030년대 초반까지 전력화될 예정이었다. 일정이 한 차례 밀려 2027년 취역으로 조정됐으나, 이번 조립 결함으로 그 목표마저 사실상 폐기됐다. 영국 해군 내부에서는 첫 실전 배치가 이번 10년대 말(2030년대 이후)까지 밀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Type 31의 기본 제원은 나름 인상적이다. 전장 138.7m, 배수량 7000톤 규모로, 최고속도 26노트 이상에 항속거리 7500해리에 달한다. 영국 버전은 Sea Ceptor 대공미사일 12셀, 57mm 함포, 40mm 보포스 포 2문, 12.7mm 기관총 다수를 탑재한다. 향후 Mk41 수직발사체계(VLS) 장착을 통해 화력을 크게 강화할 계획이지만, 현재는 VLS 탑재 공간만 확보한 채 실제 장착은 이뤄지지 않은 "설치 준비만 된(fitted-for-not-with)" 상태다. 이는 애초 빠른 취역을 위한 결정이었으나, 취역 자체가 늦어지면서 의미가 퇴색됐다. 더욱이 향후 VLS 장착을 위해 또다시 대규모 개수가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제독이 함정보다 많은 해군·2000억 개수 후 조기 퇴역·AUKUS 차질 '삼중 위기'


이번 사태가 더욱 뼈아픈 것은 타이밍이다. 영국 왕립해군은 현재 현역 함정 수보다 제독 수가 더 많다는 역설적 현실에 놓여 있다. 여기에 영국 해군은 최근 5년간 1억300만 파운드(약 2000억 원)를 투입해 개수한 노후 Type 23 듀크급 호위함 HMS 아이언 듀크(HMS Iron Duke·F234)를 조기 퇴역시키기로 결정했다.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고도 실전 전력화에 실패한 것이다.

Type 31 지연은 또한 오커스 핵잠수함 사업의 차질과도 맞물려 있다. 오커스 협정에서 호주가 도입할 핵추진 잠수함의 기반이 되는 SSN-AUKUS 함형을 영국이 먼저 설계·건조해야 하는데, 영국 조선업의 구조적 역량 부족이 Type 31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외신은 "Type 31은 영국 해군을 정상 궤도로 되돌릴 사업이어야 했지만, 지금은 영국 납세자들이 끝없이 돈을 쏟아붓는 또 하나의 바다 위 구멍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냉전 이후 지속된 군축과 투자 부족, 숙련 인력 감소, 공급망 불안이 수십 년간 누적되면서 영국 조선업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붕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수상전·대공전·지상공격·정보수집 임무를 모두 수행하는 범용 플랫폼으로 설계된 Type 31이 영국 국가조선전략의 핵심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실패는 단순한 사업 지연이 아니라 영국 방산·조선 산업 전반의 위기를 상징한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