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G-돋보기] 美·이란 평화협정, 트럼프에게 ‘전략적 굴욕’인 이유

글로벌이코노믹

[G-돋보기] 美·이란 평화협정, 트럼프에게 ‘전략적 굴욕’인 이유

'정권 축출' 호언장담하더니 결국 봉쇄 해제·자금 지원 카드 만지작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세계 경제 마비…이란에 '글로벌 통제력'만 확인시켜줘
2018년 오바마 핵협정(JCPOA) 탈퇴의 비극…플랜B 없는 일방 통행이 부른 참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정치적 사면초가'…조기 종전 놓치고 강경파만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기념관 원형극장에서 열린 현충일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기념관 원형극장에서 열린 현충일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협정 타결이 임박했다고 발표했으나,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협상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처참한 전략적 패배이자 굴욕’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당초 이란 정권 붕괴를 목표로 공세를 시작했던 미국이 도리어 이란의 가공할 세계 경제 통제력만 확인해 준 채, 이란에 제재 완화와 자금 지원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쥐여주며 퇴로를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현지시각) 미국의 시사지 더 뉴요커에 따르면 중동 전문가인 대니 시트리노비츠 애틀랜틱 카운슬 비상주 연구원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이번 협상은 미국에게 전술적 성공일지는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명백한 실패"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나쁜 선택과 더 나쁜 선택 사이에서 결국 대안이 없어 이 합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권 교체' 노린 무력 공세, 오히려 이란 강경파 결집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2월 말 이란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군사 공세를 감행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국민들을 향해 "이 땅은 당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정권 붕괴가 머지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면 압박은 오판이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수뇌부 암살과 무차별 폭격은 이란 체제에게 '존재론적 생존 투쟁'의 명분을 주었고, 오히려 내부 결집과 강경파의 입지를 유례없이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이란이 보복 카드로 꺼내 든 '호르무즈 해협 폐쇄'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세계 물류의 동맥이 막히며 글로벌 경제 위기가 현실화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지상군 파병이라는 극단적 카드 외에는 이란을 굴복시킬 수단이 없음을 깨닫게 됐다. 시트리노비츠 연구원은 "이란조차 자신들이 가진 실물 경제 통제력의 파급력에 놀랐을 것"이라며 "폭격만으로는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이 뒤늦게 자각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알맹이 빠진 합의…'오바마 핵협정' 탈퇴가 초래한 비극


현재 논의 중인 합의안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는 대가로 미국이 봉쇄를 해제하고 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포기하는 데 동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임시 동결'에 불과할 뿐 핵시설 해체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2단계)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첫 임기(2018년) 당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이란 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탈퇴한 결정을 두고 "21세기 최대의 전략적 실수"라는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당시 결함이 있더라도 이란의 핵 행동을 묶어두었던 틀을 깨버렸으면서, 정작 이란이 우라늄 농축 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안 이를 저지할 아무런 '플랜 B(대응책)'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과거 오바마 협정보다 훨씬 불리하고 허점이 많은 조건으로 이란과 다시 마주 앉게 된 꼴이 됐다.

네타냐후의 오판과 이스라엘의 전략적 붕괴


이번 협상 타결 조짐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심각한 정치적 타격이 될 전망이다. 네타냐후는 그동안 "이란을 타격할 기회만 달라"고 공언해 왔고 미국의 전폭적인 군사 지원 속에 이를 실행에 옮겼으나, 결과적으로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이자 재래식 미사일 능력을 고스란히 보존한 '더욱 극단화된 이란 정권'만을 마주하게 됐다.

미국 정보당국(CI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전쟁 중 입은 미사일 전력 피해를 수개월 내에 완전히 복구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의 전력을 궤멸시켰다"는 이스라엘 강경파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여기에 레바논 헤즈볼라 문제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레바논 내 자위권적 공격을 묵인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란은 자국 자산인 헤즈볼라 보호와 레바논 문제를 이번 평화협정의 핵심 연계 조건으로 걸고 있다. 트럼프가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네타냐후를 압박할 경우, 이스라엘 내부의 안보 불안과 정치적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뉴요커에 따르면 시트리노비츠 연구원은 "전쟁 초기에 약속했던 호언장담과 초라한 결과 사이의 격차를 보며 이스라엘 국민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네타냐후의 대이란 전략은 단순한 실패를 넘어 완전한 붕괴를 맞이했다"고 일갈했다.


이인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