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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있어도 못 켠다"… AI 패권 흔드는 '전력망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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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있어도 못 켠다"… AI 패권 흔드는 '전력망 대란'

미국 빅테크 863조 투자에도 송전 대기·NIMBY 막혀 신규 프로젝트 50.0% 폭락
중국 5년 내 전력 설비 미국의 6배 증설… 서부 재생에너지 직결로 인프라 가속
한국 반도체·데이터센터 가동률 저하 리스크 부상… 전력 장비·HVDC 수혜 부각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의 무게중심이 반도체 칩에서 '전력 공급 능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송전망 부족과 인허가 규제에 막혀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 속출하는 반면, 중국은 압도적인 청정에너지 설비 용량과 신속한 인프라 구축 속도를 무기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의 무게중심이 반도체 칩에서 '전력 공급 능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송전망 부족과 인허가 규제에 막혀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 속출하는 반면, 중국은 압도적인 청정에너지 설비 용량과 신속한 인프라 구축 속도를 무기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의 무게중심이 반도체 칩에서 '전력 공급 능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인프라 공급망 장악을 선언하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으나 송전망 부족과 인허가 규제에 막혀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 속출하는 반면, 중국은 압도적인 청정에너지 설비 용량과 신속한 인프라 구축 속도를 무기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마저 각국의 전력 제약에 묶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에너지 안보를 확보한 국가가 디지털 영토 싸움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알자지라는 지난 28(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미·AI 전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전력 인프라에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칩 풍요 속 '3대 전력 병목'에 자본지출 제동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구동하는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거대한 전기 고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 결과 기업이 자체 서버 장비를 전문 데이터 센터에 맡겨 두고 운영하는 상업용 코로케이션을 포함한 일반 데이터센터 1곳은 10만 가구, 차세대 하이퍼스케일 시설은 200만 가구가 쓸 전력을 소모한다.
현재 전체 데이터센터 인프라 규모는 미국이 우세하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데이터센터는 5427개로 중국(449)12배를 웃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메타·알파벳 등 미국 빅테크 4개 사가 AI 인프라에 투입할 자본지출(CAPEX)이 전년 대비 대폭 증가한 7250억 달러(1083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미국의 자금력은 세 가지 물리적 병목 현상에 가로막혔다. 첫째는 '송전망 접속 대기(grid interconnection backlog)' 문제다. 발전소를 지어도 인근 데이터센터까지 전기를 보낼 전력망 연결에만 수년이 소요된다. 둘째는 지역 사회의 반발과 인허가 규제(NIMBY). 지난해 중반까지 환경 오염과 계통 과부하를 이유로 미국 내에서 건설이 중단되거나 지연된 데이터센터는 최소 36개에 달한다. 셋째는 발전 믹스의 불균형이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24시간 일정한 기저 전원을 충당하기 어렵고, 가스·원전 등 기저전원 증설 속도도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우드맥켄지는 이러한 한계 탓에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신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직전 분기 대비 50%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전력 제약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의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다. 빅테크의 GPU 구매력이 전력 확보 능력에 종속되면서, 전력망 공급이 막힐 경우 첨단 반도체 출하량 증가가 곧바로 빅테크의 매출과 연동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AI 전개의 통제 요인은 근본적으로 전력"이라며 "칩이 있어도 켜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3대 취약점'에도 동수서산 전략으로 인프라 가속


반면 중국은 전력의 풍부함을 무기로 미국의 턱밑까지 격차를 좁히고 있다. 중국의 연간 총발전량은 이미 미국의 2배를 넘어섰으며,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향후 5년간 중국이 미국보다 6배 이상 많은 전력 설비용량을 증설할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은 이 전력을 AI 인프라와 결합하는 '동수서산(동부 지역의 데이터를 서부에서 연산)' 전략을 전면에 내걸었다. 지난 12일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닝샤 지역에서 500메가와트(MW) 규모의 풍력·태양광 발전단지와 다탕그룹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전용 송전선으로 직접 연결하는 프로젝트의 가동을 발표했다.

500MW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수 개를 동시에 구동할 수 있는 초대형 전력 규모다.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리아 파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규제가 덜한 중국은 화웨이의 모듈러 데이터센터를 6달 만에 짓는다""이는 최소 1년이 걸리는 미국 대비 2배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리스타드에너지는 오는 2030년 중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이 현재의 2배 수준인 60기가와트(GW)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수출 통제로 최고급 반도체 수급이 막히자, 화웨이가 설계하고 SMIC가 제조한 토종 반도체를 결합해 인프라 대형화로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다만 전력 효율(전력당 연산량)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 대비 격차가 존재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중국의 인프라 확장 속도 뒤에는 세 가지 구조적 취약점이 존재한다. 첫째는 송전 병목이다. 중국의 전력망 시스템은 성() 단위로 분절되어 운영되므로 서부 내륙의 전력을 전국으로 유연하게 유통하는 도매시장 형성이 더디다. 둘째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다. 서부의 풍부한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 데이터센터가 베이징·상하이 등 동부 대도시 주변에 밀집해 있어 실질 가동률은 20%에서 30% 수준에 머문다.

하워드 유 IMD 경영대학원 교수는 "베이징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설비 과잉으로 자칫 유휴 시설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셋째는 칩 성능의 효율 한계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카일 찬 연구원은 다른 기종의 토종 칩을 묶어 연산 클러스터를 구축하다 보니 시스템 결합력과 정밀도 측면에서 품질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시장 '최종 병목' 전력망, 위기와 기회의 공존


·중의 전력 확보 전쟁은 한국 경제와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리스크와 기회를 동시에 던진다.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국내 수도권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막대한 기저 전원이 필요하지만, 송전망 건설 지연과 지역 주민 반발로 전력 공급 체계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에너지가 받쳐주지 못하면 아무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어도 국내 AI 산업 자체가 고사하고 투자회수가 지연되는 치명적인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 이는 국내 전력 인프라 및 전력 장비 기업들에게 거대한 기회 요인이다. 변압기, 전력 케이블, HVDC 컨버터, 원전 EPC 등 전력 장비 밸류체인이 직접적인 수혜 구간으로 꼽힌다. 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 인프라 구축, 서해안 재생에너지와 수도권을 잇는 초고압 직류송전(HVDC) 망 확충 체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면서 관련 기자재 공급망 전체가 장기 수혜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향후 글로벌 빅테크의 공급망 확장성과 자산별 수익성을 판단하려는 국내 투자자들은 다음의 세 가지 실무 지표를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

첫째, 북미 빅테크의 전력 수급 계약(PPA) 단가와 계약 기간이다. 빅테크가 청정에너지를 센트(¢/kWh) 단위로 얼마나 저렴하게 확보하는지,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었는지에 따라 AI 서비스의 장기 마진율과 GPU 구매 지속성이 결정된다.

둘째, 둘째, 한국전력의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 용량 및 준공 이행률이다. 원전 기저전원을 수도권 핵심 반도체 생산 라인과 데이터센터로 전달하는 초고압 직류송전망(동해안-신가평 선로 등)의 기한 내 준공 여부가 국내 클러스터 가동률의 향방을 가른다.

셋째,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적용에 따른 데이터센터 지방 이전 실적이다. 수도권 규제를 피해 강원, 전남 등 발전소 인근 특구로 실제 이전한 데이터센터 유치 개수와 세제 혜택 강도가 국내 인프라 지형도를 재편하는 지표다.

과거의 기술 경쟁이 프로세서의 연산 속도 싸움이었다면, 앞으로의 승패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운용하는 인프라 경쟁에 달려 있다. 이제 AI 경쟁의 단위는 테라플롭스(TFLOPS)가 아니라 메가와트(MW)이며, 반도체가 아닌 전력망이 AI 시대의 최종 병목이 됐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